[시시콜콜] 환경 규제 완화 읍소하는 자동차 '안방 내줄 자신 있나'

  • 입력 2020.11.06 12:00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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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벌금을 내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영국 재규어 랜드로버는 CO2 초과 배출에 따른 벌금 1억1700만 달러(한화 약 1330억원)를 물게 될 처지가 됐다. 지난 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적자에 이어 올해 코로나 19로 더 심각한 상황에서 감당하기 힘든 규모지만 달리 방법은 없다.

유럽에서 자동차를 만들거나 판매하는 업체들이 강력한 이산화탄소(CO2) 배출 규제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유럽은 내년부터 자동차 대당 CO2 배출량이 95g/km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배출량 1g/km당 95유로(한화 약 13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연간 판매량에 따라 새 규제를 적용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2021년에는 제조사마다 판매한 모든 자동차 평균 배출량을 기준으로 새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 10만대를 팔았다면 전체 차량 연비로 평균을 잡아 초과한 CO2 배출량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CO2 배출량이 95g/km를 맞추기 위해서는 가솔린 엔진 평균 연비가 24km/ℓ 이상 도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지금 엔진 기술로는 실현 불가능한 수치다. 유일한 대안은 배출 가스가 전혀없는 전기차 또는 수소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모델 판매를 늘리는 것이다. 대중 브랜드, 프리미엄 브랜드, 고성능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순수 전기차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심지어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경쟁적으로 출시하는 것도 천문학적 벌금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에도 영국 PA 컨설팅은 유럽 지역 판매 상위 13개 업체가 내년 CO2 배출 규제로 145억 유로(한화 약 18조 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은 폭스바겐은 45억 유로(약 6조원), 현대차도 약 3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내연기관차 판매가 많을 수록 물게 될 벌금이 기업 이익을 초과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방법으로 CO2 배출량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 입법 예고된 ‘자동차 평균 에너지소비효율·온실가스 배출허용기준 및 기준의 적용·관리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승용차 기준 CO2 배출량을 30% 낮추거나 평균 연비를 36% 이상 높이도록 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10인승 이하 승용차 또는 승합차는 CO2 배출량이 70g/㎞ 이하이거나 연비는 33.1㎞/ℓ 이상이어야 한다. 지금은 CO2 배출량 97g/㎞, 평균 연비는 24.3㎞/ℓ 그리고 친환경 차량에 가중치를 주는 방식이지만 앞으로 10년 안에 규제에 대응하지 못하면 엄청난 과징금을 내 거나 규제 크레딧을 구매해야 한다. 

이를 두고 자동차 제조사들은 최근 지나친 규제라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려는 정부 정책에는 이견이 없지만 코로나 19로 대내외적 여건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매년 환경 규제에 맞춰 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며 기준을 완화하거나 시행 시기를 늦춰 달라는 것이다. 당장 2023년까지 CO2 배출량 95g/㎞를 맞추기도 힘든 상황에서 2030년 규제 대응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규제가 느슨해질 경우 맞게 될 역풍을 더 우려해야 한다. 자동차를 팔수록 부담해야 할 벌금 액수가 늘어나게 될 제조사들은 유럽 시장에는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 등 전동화 모델을 집중 투입하고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국가에 가솔린이나 디젤 모델을 공격적으로 팔려고 나설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유럽산 디젤차 점유율이 유난스럽게 높은 우리나라 사정으로 봤을 때, 만약 업체들이 요구한 대로 규제를 완화하거나 시행 시기를 늦추면 유럽산 내연기관차 처분 시장이 될 수도 있다. 최근 국내에 투입되고 있는 유럽산 디젤차들이 원산지와 비슷하거나 일부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유럽은 생산 시점이 아닌 판매 시점을 기준으로 내년 1월부터 새로운 환경 규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연말이 다가올수록 이런 방식으로 재고 모델 치고 빠지는 마케팅이 계속될 수 있다. 이미 적지 않은 수가 국내로 들어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환경 규제 시기를 늦춰 달라고 읍소하는 것은 따라서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수입차 시장을 80% 이상 점유하고 있는 유럽산, 이 가운데 90% 가까이 되는 내연기관차가 환경 규제가 덜한 틈을 노려 쏟아져 들어오면 그 피해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그런 틈을 만들어 준 제조사가 입게 된다. 따라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차 지원을 강화해 달라고 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더불어 환경 규제는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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