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뚜렷해지는 '살아 남거나 사라질 대한민국 완성차'

  • 입력 2020.09.28 08:55
  • 수정 2020.09.28 09:15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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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조가 2년 연속 무분규, 11년 만에 기본급 동결을 택했다. 노조는 지난 25일, 기본급 동결과 경영 성과급 150%, 코로나 위기 극복 대응 특별 격려금 120만원 지금 등을 골자로 한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 합의안을 놓고 전체 조합원 찬반 투표를 시행하고 52.8%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과거 전례로 보면 기아차도 조만간 비슷한 내용으로 올해 단체협상과 임금협상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연초만 해도 올해 현대차 노사 협상은 난항이 예상됐다. 예년보다 늦은 8월 상견례가 시작됐지만 현대모비스 전기차 생산 이슈와 고용 보장, 해외 생산량 축소 등 이견이 많았고 노조는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기본급 인상과 성과금 지급을 요구했다.

잠정합의안이 나왔을 때만 해도 집행부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조직과 일부 노조원이 강하게 반발해 찬반 투표에서 통과되기 힘들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수 현대차 노조위원장이 임단협을 바라보는 국민 여론, 코로나 19로 인한 회사 경영 악화를 직접 호소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런 분위기를 현대차 노조 8대 집행부가 함께 이끌었다는 점에도 큰 의미가 있다. 노조 집행부는 잠정합의안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 19 경제 위기라는 악조건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정리해고, 임금삭감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가운데 만들어낸 소중한 협상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집행부는 특히 인기를 의식한 포플리즘, 당장 임금을 올리는 대신 미래를 위한 생존을 올해 임금교섭 키워드로 정했다고 호소했다. 임금을 올리기 위해 투쟁만 강조했던 이전 현대차 노조와 사뭇 다른 행보에 노조원들은 인식을 바꿨다. 노조는 무분규, 임금 동결을 선택한 대신 고용 유지와 향후 사측과 벌일 다른 협상은 명분을 갖고 유리한 입장에서 벌일 수 있게 됐다.

노조는 임단협 외에도 국내 생산 물량 174만대 유지, 전동차 확대에 따른 대응 논의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고객 및 국민과 함께 하는 노사 관계 실현'을 위해 신차 발표에 노조 대표가 참석하고 자동차 동호회 등 고객 대표단과 간담회를 열고 신차 품질 및 성능 홍보를 위한 대고객 홍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현대차에 이어 기아차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상황이 더 심각한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차 그리고 쌍용자동차는 아직 잠정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강경 대치 국면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 임금 및 단체협약 중재 중지 결정으로 파업권을 확보한 한국지엠 노조는 추석 연휴 이후 파업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르노삼성차 노조 역시 집행부가 강하게 추진했던 민주노총 가입 찬반 투표 부결에도 임단협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올해 8월까지 누적 판매 대수가 지난해보다 20.6% 줄었고 르노삼성차 역시 26.6%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지엠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통상임금과 성과금 등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 매각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는 쌍용차는 사정이 다르다는 점에서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차 노조 임금 인상 요구는 황당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한국 자동차 노조를 강성으로 이끌었던 현대차 노조는 현실을 인식하고 변화하고 있는데 말 한마디로 철수가 결정되는 외국계 완성차 노조는 수천억 적자에도 임금을 올려 달라며 이해하기 힘든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누가 남고 사라질지 뻔히 보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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