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패트병 하나면 흉기로 돌변하는 '첨단 운전 보조 시스템'

  • 입력 2020.07.22 12:00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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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자율주행을 목표로 달려가는 자동차에 첨단 장치가 속속 사용되면서 부작용도 따라 늘고 있다. 일정한 속도에 맞춰서 혹은 정해진 속도 이상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크루즈 컨트롤이나 일정 속도 이상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스피드 리미트가 전부였던 자동차 첨단 운전 지원시스템(ADAS)은 이제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일정 거리 주행이 가능해졌다.

요즘 나오는 신차에는 앞서가는 차량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주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이나 완전 정지 후 다시 출발 할 수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SCC)로 제한 속도 구간이나 굽은 길에서 감속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차선 이탈을 경고(LDW)해 주는 시스템도 진화해 이제는 차선을 벗어나려고 하면 스티어링 휠을 제어(LKAS)하고 차선 중앙을 유지해 주는 차로 유지보조 기능(LFA)으로 발전했다.

이런 시스템이 탑재된 차량은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자기 차로, 안전거리, 알아서 멈추고 출발하게 된다. 최근 출시된 일부 모델에는 차로 변경이 가능한 기능까지 적용됐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에서는 실제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지 않는 행위가 아직 위험하다고 보고 제한적 사용만 가능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차량에 자동 조향, 자동차로 유지와 같은 첨단운전 보조 장치가 적용됐어도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경고를 하고 그래도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으면 해제 되도록 관련법으로 규정해 놨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ADAS를 켜고 15초 이상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이를 경고하고 그래도 개입하지 않으면 이 기능이 해제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안전 규제는 시스템이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율주행 3단계 수준에는 도달해야 제한적으로 풀릴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기껏해야 차선과 간격을 유지하는 '주행 보조' 시스템을 '자율주행'처럼 사용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운전대에 무거운 쇳덩어리를 달고 심지어 음료수 페트병으로 센서가 오인을 하도록 해 ADAS 모드로 계속 주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매우 위험한 행위가 지금 도로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운전대는 방향을 전환하는 단순 기능뿐만 아니라 주행 안전을 돕는 유용한 센서들이 림 안에 숨겨져 있다. 운전자가 운전대를 쥐고 있는지를 판단하고 조작하는 힘이나 빠르기를 감지해 차체 반응을 제어할 수 있는 정보도 제공한다. 센서 오작동으로 운전대를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형태로든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애매한 주변 피해자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자동차 안전 요소 가운데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운전대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주행 보조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편법이나 장치는 테슬라 오토 파일럿이 부각되기 시작한 2016년부터 나돌기 시작했다. 오토파일럿 버디라는 이 제품은 당시 테슬라가 '자율주행' 장치라고 얘기한 '오토파일럿'을 겨냥한 제품으로 중량 센서를 무력화시켜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항속이 가능해 인기를 끌었다.

테슬라가 주장하는 오토 파일럿을 즐기려는 사람이 늘면서 이 위험한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자 미국 고속도로안전협회(NHTSA)는 판매 중단 조처를 내리는 등 즉각적인 조치에 나섰다. NHTSA는 "안전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운전자 본인은 물론 도로의 모든 자동차와 사람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제조 및 판매 중단 명령을 내렸다.

오토 파일럿 버디 제조사는 미국 이외 지역 판매를 위한 것이라며 생산을 계속했다. 그리고 유사한 제품이 최근 국내로 유입돼 판매되고 있다. '오토 파일럿 헬퍼'로 불리는 이 모듈은 무게가 나가는 금속 물체를 운전대 뒤쪽 오른편에 부착해 테슬라 오토파일럿 핸들 감지, 중량 센서를 무력화시켜 운전대를 잡으라는 경고 메시지 없이 항속과 자동 조향이 계속 유지될 수 있게 해 준다.

테슬라뿐만이 아니다. 국산차나 수입차를 가리지 않고 ADAS가 적용된 차량 일부 운전자들은 자체 제작한 모듈이나 플라스틱 패트병을 운전대 사이에 끼어 센서를 무력화시킨 후 어디서 어디까지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않고 '자율주행'에 성공했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운전자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테슬라 차량에서 발생한 치명적 사고 대부분이 오토 파일럿을 과신한 데서 비롯된 것처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ADAS 시스템을 적용한 어떤 차도 최소한 안전장치를 무력화시켜서는 안된다.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안전 경고를 더 강화하고 운전자가 자율주행이 아닌 주행 보조 장치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런 무력화 장치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그런데도 이 위험천만한 제품이 인터넷을 통해 거래되고 있고 심지어 작은 운동기구나 무게가 나가는 물건으로 만든 자작 버전까지 넘쳐나고 있다.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하고 운전대에서 손을 뗀 채로 잠을 자면서 달리는 듯 또는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 '주작' 동영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조금은 편안하고 안전한 운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동차에 사용된 첨단 주행 보조 장치가 역으로 '도로 위 흉기'가 돼가고 있는 셈이다. 이 위험한 행동들을 즉각 살펴보고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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