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전기차보다 못한 경차는 없다

  • 입력 2020.04.10 12:00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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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순수 전기차 I‑PACE, 대당 가격 <br>
대당 가격 1억1350만원의 재규어 순수 전기차 I‑PACE, 서울에서 택시로 등록하면 1820만원의 지원을 받는다

서울시가 어제(9일) 수입 전기차의 택시 대체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지금까지 지원해 왔던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아이오닉 일렉트릭 그리고 기아차 쏘울 EV와 코나 EV 4개 차종 말고도 재규어 i-PACE, 테슬라 모델3, 닛산 리프 등 수입 전기차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택시 회사가 현재 운행하고 있는 LPG 차를 전기차로 대체하면 700대 한정 최대 182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일반 전기차도 많게는 1000만 원 이상의 국고 및 지자체 보조금을 받는다. 전기차 보급을 위해 정부가 올해 책정한 충전소 설치 예산은 1조 원이 넘는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이렇게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이 쓰인다.

잘한다고 해도 대부분 LPG를 사용하는 택시를 전기차로 대체하는데 2000만 원 가까운 비용을 대신 지불하겠다는 서울시 정책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700대 곱하기 1820만 원은 127억4000만 원이다. 서울시에서 운행되고 있는 8만여 대의 택시 중 1%도 되지 않는 700대를 이 돈을 들여 전기차로 교체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LPG를 사용하는 덕분에 택시는 버스나 화물차와 다르게 '환경 오염'이라는 멍에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휘발유, 경유 사용차와 다르게 LPG차를 친환경차로 분류해 전기차와 같은 수준의 지원을 하고 보급을 장려하는 국가도 수두룩하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친환경차(LPG)를 친환경차(전기차)로 바꾸는데 수백억 예산을 쓰는 셈이 된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그 돈을 경차 택시 지원에 사용하면 어떨까. 1인 이용자가 많은 우리나라 택시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일정 대수를 경차로 운행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가 전기차에 지불하는 지원금이면 1000대가 넘는 LPG 경차를 공짜로 사 줄 수 있다.

파격적인 혜택(?)에도 1분기 판매량이 2만대를 가까스로 넘긴 경차

하고 싶은 얘기는 환경이 이슈가 되면서 모든 관심과 지원이 근본도 없이 '친환경차'로 불리는 전기차, 하이브리드카에 쏠리고 서울시가 억대의 수입 전기차를 택시로 등록할 때 아낌없이 돈을 퍼 준다고 했을 때 홀대 받는 우리의 경차는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차는 가격 상한선(1250만 원 이하)을 두고 취ㆍ등록세 면제(많아야 50만 원), 유료도로 통행료 50% 할인, 일 년에 몇 번 다닐지도 모를 공영주차장 할인 같은 혜택을 받는다. 이 엄청난 혜택을 주는데도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경차 등록 대수는 수입차, 상용차를 모두 합쳐 196만대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전국 자동차 등록 대수 2370만여 대의 10%에 불과하다.

지금은 숨이 끓어질 지경까지 왔다. 올해 1분기 경차 누적 판매 대수는 2만3000대 남짓으로 올해 8만 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한 해 20만대 이상이 팔린 적이 있고 판매 비중이 25%에 달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겨우 목숨만 연명하고 있다. 경차를 죽이고 있는 가해자는 여럿이다. 정부 정책의 홀대, 사회적 인식, 돈이 안 된다며 작은 차를 만들지 않는 제조사 모두 공범이다.

경차 비중이 30%를 넘는 일본은 우리보다 기준이 세고 혜택이 적지만 정반대의 공범들 덕분에 세계 최대의 경차 천국이 됐다. 전기차 지원을 시샘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안 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당 가격이 1억 원을 넘나드는 재규어, 테슬라의 전기차를 택시로 바꿀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퍼주는 마당에 왜 경차는 홀대를 받아야 하고 누구도 임종의 순간마저 지켜보려 하지 않는지 안타까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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