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유감 단종차 #9. '액티언다움' 벤츠도 따라하는 쌍용차의 혜안

  • 입력 2020.03.13 10:17
  • 수정 2020.03.16 16:30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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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그랜드 워커힐 서울, 서울 광진구)은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다. 한강을 남쪽으로 바라보면 잠실까지 이어졌던 고층 건물이 드문드문해지면서 제법 먼 곳까지 눈길이 확 트인다. 날씨가 맑으면 너르고 적당하게 몸을 낮춘 하남, 멀리 검단산, 남한산 절경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가을꽃 단풍빛이 살짝 비추기 시작한 10월 풍경은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도 2005년 워커힐에서 만난 소진관 당시 쌍용차 사장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로 워크아웃에 돌입한 쌍용차는 2004년 중국 상하이 기차를 대주주로 맞이하고 단 1년 만에 벼락처럼 신차를 만들어 냈다.

이날 신차를 발표하면서 소진관 사장은 "월 3000대를 팔겠다"라고 장담했지만 자신감은 보이지 않았다. 풀 죽은 장담의 이유는 그때 한 임원의 얘기로 이해가 됐다. 그는 "(목표대로 팔려면)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왜요?" 그는 "코란도 대신 만든 모델명이 너무 거칠고 생긴 것도 너무 낯설다. 그걸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소 사장, 그리고 신차 출시 현장에서 만난 쌍용차 관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이날 개발 주역들조차 고개를 흔들었을 정도로 낯설었던 차 액티언(ACTYON)이 탄생했다. 상하이 기차의 강요로 코란도라는 이름을 버리고 택한 차명 액티언은 액션(Action), 영(Young)의 합성어다.

액티언은 의미 이상으로 낯선 외관 때문에 시선을 끌었다. 껌딱지처럼 얄팍해진 프런트 그릴, 만화 캐릭터 같은 헤드램프, 동글동글하고 밋밋한 보닛은 코란도, 무쏘를 통해 남성적이고 우직한 외관을 자랑으로 했던 쌍용차 이미지를 싹 갈아엎었다. 압권은 C 필러에서 루프라인을 완만하게 깎아내고 리어 글라스를 눕혀 놓은 해괴한 생김새였다.

벨트라인 위로는 해치백과 다르지 않았지만 테일 게이트를 두부 자르듯 수직으로 곧추세우고 지상고를 올려 SUV의 장르도 고수했다. 그러나 세단은 세단이고 쿠페면 쿠페고 무엇보다 SUV는 우직하거나 강한 실루엣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었던 때 액티언은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안방에서 뿐만이 아니다. 액티언은 해외 여기저기에서 '못생긴 자동차 톱 10'에 여지없이 등장하고 있을 정도로 정체불명의 생김새 때문에 악평을 받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BMW, 메르세데스 벤츠를 비롯한 유수 브랜드가 액티언과 다르지 않게 루프라인을 쿠페처럼 다듬어 영락없이 액티언스러운 SUV를 내놓기 시작했다.

BMW를 대표하는 쿠페형 SUV X6는 액티언보다 2년이나 늦게 발표됐고 가장 최근 르노삼성차가 내놓은 XM3도 액티언의 디자인 컨셉을 따르고 있다. 먹튀 소리까지 들었던 상하이 기차가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춘 것인지 쌍용차가 세상의 변화를 예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은 그렇게 변했고 변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어쨌든 비포장 신작로에서 뿌연 길 먼지를 날리고 달려야 제맛으로 봤던 정통 SUV를 도심형 SUV로 컨셉을 바꾼 액티언은 파격적인 생김새에 4455mm의 전장 2740mm의 휠베이스, 더블 위시본(전)과 5링크 코일 스프링(후)으로 서스펜션을 맞췄다. 그 때 시승을 하면서 참 투박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승차감은 평균 이하였지만 XDi200(2.0리터) 커먼레일 디젤 엔진은 3세대 터보차저 기술을 사용해 최고출력 145마력, 최대토크 31.6kgf.m의 무난한 성능을 발휘했다. 연비는 수동 변속기 13.1km/ℓ, 자동 변속기 11.8km/ℓ를 갖췄다. 실내에도 제법 파격다움이 있었다. 클러스터 하우스에서 센터패시아로 연결되는 대시보드에 비대칭 라인을 사용하고 스티어링 휠 리모트 컨트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에어 벤트까지 낯선 것들이 제법 있었다.

복잡한 동선으로 짜인 변속기, 센터패시아에 자리를 잡은 버튼류의 생김새와 배열은 꽤 오래 쌍용차의 다른 모델에도 사용이 됐다. 액티언은 요즘 말로 '미래 지향적', '정체성을 상실한 중국형' 따위로 극과 극을 오갔지만 호평보다 악평이 많았던 탓에 판매는 부진했다. 상하이 기차는 처음부터 작정한 듯 실속을 챙켜 보따리를 쌌고 결국 2011년 부활한 코란도에 밀려 액티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액티언이 나오면서 코란도가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오히려 다행스러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쿠페형 SUV가 요즘 트랜드라고 해도 코란도가 액티언스러웠다면 더 끔찍했을 것 같다. 액티언의 출시 당시 시작 가격은 2WD 수동변속기 1741만원, 4WD 최고급형은 2580만원이었다. 자동변속기는 전 트림 선택사양이었고 픽업트럭 '액티언 스포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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