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유감 단종차 #5. 기아차 슈마 '힘 들 때 위로가 됐던 스포츠 세단'

  • 입력 2020.03.09 12:10
  • 수정 2020.03.16 16:31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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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경제 위기(1997년)는 대한민국의 일상을 바꿔버렸다. 평생직장으로 생각했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실직자, 신용불량자가 속출했다. TV를 켜고 신문을 펼치면 망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기업의 부도 소식이 끓이지 않고 또 가득했다. 직장을 잃은 지인들과 매일 폭주를 했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빛을 발하는 저력을 가진 민족답게 오래지 않은 2001년 8월 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난다.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가 이날 오전 10시 30분 IMF에서 빌린 돈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1억4000만 달러를 상환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었다. IMF 구제 금융 기간 자동차 산업은 격변했다. 대우자동차는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02년 제너럴모터스(GM)에 팔리는 운명이 됐다. 1998년 대우자동차가 인수했던 쌍용자동차는 분리 매각을 통해 중국 상하이 기차로 주인이 바뀌었고 삼성자동차도 르노라는 새 주인을 맞는다.

1997년 7월 부도를 맞고 1998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아차는 1998년 10월 유일하게 국내 기업인 현대자동차의 품으로 들어갔다. 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기아차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비상 시국'이라는 상황에 맞지 않게 신차 개발에 매달렸다. 막대한 개발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의 주변 우려에도 개발을 마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모델은 해치백 타입의 스포츠 세단 슈마(SHUMA).

차명 슈마는 라틴어로 최고라는 의미의 '섬마(SUMMA)'와 아메리카 표범으로 불리는 퓨마(Puma)를 버무린 것이다. 세피아 II의 파생모델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기아차는 스포츠 세단임을 강조했고 머지않아 주인이 될 현대차 티뷰론을 견제하기 위한 존재임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어려운 시기에 악조건을 극복해가며 개발했지만 시장 반응은 밋밋했다.

뒤 모양새를 빼면 세피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김새에 파워트레인의 수치는 스포츠 세단에 다가서지 못했다.벤츠와 듀얼 램프를 연상케 하는 헤드램프, 세피아의 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루프와 보닛, 앞모습의 구성으로 외관에 혹평이 쏟아졌지만 실내는 달랐다. 센터패시아 패널과 클러스터 베젤을 그레이 메탈로 꾸민 콕핏은 철저하게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됐고 그때 기준으로 모던했다.

3개의 큼직한 원형으로 구성된 클러스터, 에어 벤트에서 안개등과 비상등 버튼, 오디오 시스템과 공조 시스템을 꽤 정돈감 있게 배치한 인테리어는 호평을 받았고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적도 있다. 파워트레인은 1.5 SOHC, 1.5 DOHC, 1.8 DOHC로 구성됐다. 최고출력은 92마력, 105마력, 139마력을 각각 발휘했고 5단 수동변속기와 4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렸다.

성능 제원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T8D와 B5D 엔진이 가진 뛰어난 반응과 튜닝이 간편하다는 장점으로 모터스포츠에도 출전해 '스포츠 세단'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기아차는 슈마가 정통 스포츠카 엘란의 파워트레인을 이어받아 성능에서 경쟁 차를 압도한다며 노골적으로 현대차 티뷰론을 경계하기도 했다. 어렵게 등장한 만큼 기아차는 슈마를 알리는데 온갖 정성을 쏟았다.

CEO가 슈마를 몰고 드라마 카메오로 출연했는가 하면 법정관리인 진념 회장도 출퇴근 차량으로 이용하면서 슈마를 띄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차였어도 IMF 구제 금융을 받는 상황에서 고분고분하지 않은 스포츠 세단이 제대로 팔릴 리가 없었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직원에게 반 강매를 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세상 웬만해서는 주머니를 열지 않는 소비 심리, 그나마 있는 수요마저 현대차 티뷰론에 쏠리면서 2001년 7월 짧은 생을 마치게 된다. 중국, 유럽, 남미 등에서는 슈마와 다른 모델에 슈마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도 했다. 

생은 짧았지만 슈마는 기아맨들에게 깊게 각인된 모델이다. 슈마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지만 회사의 존폐가 등불 같았던 때, 전사적으로 매달려 한 푼 한 푼을 아끼고 밤잠을 설쳐가며 뭔가를 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일깨워 주고 위로가 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네사 메이의 아이 필 러브와 유럽 도심을 배경으로  달리는 레드 컬러 슈마의 광고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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