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유감 단종차 #3. 국산 최초의 톨보이 해치백 '라비타'

  • 입력 2020.03.05 13:30
  • 수정 2020.03.16 16:31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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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차보다 짧은 전장(4050mm), 성인 높이의 전고(1635mm)를 가진 괴상한 차였다. 후미 쪽은 잘라낸 듯 뭉툭했고 계기반은 센터패시아 상단에 자리를 잡았고 앞 유리는 어색할 정도로 면적이 넓고 경사가 완만했다. 낮은 지상고에 높게 배치된 시트의 위치로 운전석에 앉으면 RV 이상의 시야를 갖게 했다.

벨트라인이 낮고 측면의 유리 면적도 상당한 크기여서 개방감이 지나칠 정도였다. 오래전 시승을 하면서 그런 낯설던 것에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2001년 현대차가 공개한 라비타(LAVITA)는 태생이 금수저였다. 페라리를 비롯해 피아트와 란치아 등을 대표하는 모델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닌파리나'의 그 유명한 로렌조 라마치오티가 디자인을 주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력이 화려하다.

라비타는 포니로 해외 시장을 개척한 현대차가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현지 전략형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개발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피닌파리나의 손은 잡은 것도, 파격적인 디자인과 이에 못지않은 실내의 구성을 과감하게 수용한 것도 그런 이유다.

라비타는 해외에는 매트릭스(Matrix)라는 차명으로 수출되기도 했고 호주 등 일부 지역에 엘란트라 라비타로도 불렸다. 라비타는 이탈리아어로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는 'LA VITA'에서 따온 것이다. 차종을 분류하자면 도시형 멀티 세단 정도로 보면 되겠다.

독특한 외관 못지 않게 라비타는 센터패시아 상단 계기반으로 더 주목을 받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센터패시아 상단 계기반은 운전대 너머의 작은 패널에 경고등 몇 개를 남기고 속도계, 엔진 회전계가 담긴 계기반 위치를 과감하게 바꿔버렸다. 라비타는 국산차 최초로 핸즈프리라는 첨단 사양을 갖춘 모델이기도 하다.

후기형에는 풀 오토 에어컨, 핸들 오디오 리모콘, 도난방지장치가 전 모델에 기본 적용됐고 리어 휠 디플렉터와 리어 스포일러, 밴드 스트라이프, 전동 접이식 아웃사이드 미러, MP3 오디오와 같은 첨단 사양도 가득했다. 

공간은 다목적 용도에 맞게 넓은 공간과 다양한 수납공간을 갖춰놨다. 2600mm의 휠베이스를 기반으로 우산을 보관하는 작은 수납함이 계기반을 밀어낸 운전대 아래에 있었고 서랍식 컵홀더, 접이식 테이블은 물론 시트 아래에도 수납공간이 있었다. 2열 시트의 6:4 폴딩으로 화물칸 적재 용량을 대형차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반떼 XD와 공유한 플랫폼에는 1.5ℓ, 1.6ℓ, 1.8ℓ 가솔린 그리고 유럽 수출 모델에는 디젤 1.5ℓ가 탑재됐고 여기에 4단 자동변속기와 5단 수동변속기로 조합됐다. 주력이었던 1.5 DOHC 가솔린은 최고 출력 100마력, 최대 토크 13.4kg.m, 1.8 DOHC는 최고 출력 123마력, 최대 토크 16.5kg.m의 성능을 발휘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성능 제원이 빈약했지만 차체가 작은 덕분에 꽤 민첩한 거동 능력을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가격은 800만원대부터 시작했다. 라비타의 초기 반응은 뜨거웠다. 소형 MPV라는 시장을 개척하면서 데뷔 첫해인 2001년 1만대 넘게 팔렸고 르노의 시닉과 오펠 자피라의 기세가 등등했던 유럽에서도 제법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라비타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세단의 수요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비슷한 성격에 세제 혜택까지 받는 LPG차 기아차 카렌스, 대우차 레조에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2003년 3741대, 2004년 1671대, 2005년 649대가 팔린 데 이어 2006년에는 600대를 가까스로 넘기며 애물단지가 됐다. 

결국 현대차는 2007년 2월 더 이상의 라비타 생산 중단을 선언했다. 다만 유럽에서의 인기를 기반으로 현대차 터키 공장에서 2010년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라비타의 뛰어난 활용성 때문에 단종을 아쉬워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꽃집을 운영했던 누군가는 라비타가 단종된다는 소식에 2대를 한 번에 구매한 적도 있었다.

라비타의 계보는 우여곡절 끝에 JC(프로젝트명), 오리지널 해치백으로 변신한 지금의 ix20가 이어 받았다. 공교롭게도 ix20 역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인기가 더 높다. 시대를 뛰어넘는 개척자였지만 지금 라비타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희귀 차종이 됐을 정도로 빠르게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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