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유감 단종차 #1. 최초의 고유 모델 '현대차 포니' 두고두고 아쉬운 걸작

  • 입력 2020.03.03 08:43
  • 수정 2020.03.16 16:31
  • 기자명 김흥식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사장에 취임한 누군가 현대차 울산공장을 순시하던 중 먼지가 가득 쌓인 자동차를 보고 말했다. "저게 왜 여깄어". 직원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포니 1호 차입니다" 사장의 얼굴에 노기가 보였다. "그러니까 포니가 왜 여기있냐고?" 다음날 국산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 1호 차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영영 볼 수 없었다.

믿거나 말거나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래전 현대차 직원에게 '포니 1호 차'가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 들었던 얘기다. 회사 승계 과정이 치열했던 것도 있었지만 전임 사장의 치적을 터부시하고 이제부터 새로운 지배력을 강요해야 직성이 풀렸던 그때의 기업 문화, 총수의 인식이 국산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없애 버렸다.

그렇게 사라졌지만 포드의 기술로 하루 2~3대의 코티나를 겨우 생산하고 있던 현대차가 고유모델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을 때 세상은 가능하지 않은 일로 봤다. 고 정세영 회장의 특명으로 자동차를 어떻게 만드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문외한의 엔지니어들은 일본과 이탈리아로 날아가 현장 실습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신차 개발 과정을 훔쳐보며 배웠다.

그들의 노력으로 미쓰비시 랜서를 베이스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디자인을 입힌 포니 콘셉트카가 1974년 토니노 모터쇼에서 데뷔한다. '포니 정'으로 불리는 고 정세영 현대차 초대 회장이 고유 모델 개발을 선언하고 1년 4개월 만에 일궈낸 성과였다.

지금으로 보면 패스트백 스타일의 포니는 신생 업체가 만들어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세련된 스타일로 당시 자동차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리고는 1년도 안 돼 국산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의 양산이 시작됐다. 포니의 등장으로 브리사, 코티나, 코로나 등은 급속하게 명운을 다했다. 포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쓰비시 새턴 엔진을 올린 포니는 최대 배기량 1439cc에서 92마력의 출력을 발휘했다. 전장은 3970mm, 전폭 1558mm로 작년까지 계보를 이어왔던 엑센트보다 작은 차체에 2340mm의 비교적 여유가 있는 휠베이스를 갖고 있었다. 1238cc(80마력)의 저배기량 모델도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모델답게 각종 첨단 기술도 사용됐다. 초기에는 4단 자동변속기로 출발했지만 아이신 3단 자동변속기가 추가됐고 4도어 패스트백, 3도어 해치백, 왜건, 픽업트럭 등 다양한 파생 모델로도 선을 보였다. 포니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1976년 출시 첫해에 국내 전체 수요의 40%에 달하는 1만여 대가 팔렸고 당시의 대우, 기아차에 열세였던 순위를 단박에 1위로 끌어 올렸다.

옛날 자료를 보면 당시 포니의 가격은 228만9200원이었다. 당시 중앙 일간지 6년 차 기자의 급여가 9만 원가량이었으니까 가격으로 보면 지금 벤츠의 최고급 모델이 부럽지 않은 차였다. 1976년 에콰도르에 6대의 포니가 수출되면서 국산 차 수출 시대를 열었던 모델이기도 하다.

포니라는 차명이 사라진 건 1990년이다. 1982년 포니2로 이어지며 명맥을 이어갔고 1985년 포니 엑셀과 함께 생산됐지만 1990년 부터는 생산되지 않았다. 일반 승용 포니는 앞서 1988년 이미 단종된 이후였고 이전까지 택시 전용으로만 팔렸다. 유럽에서는 1989년까지 후속인 엑셀에 포니라는 이름을 달아 팔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포니의 흔적이 지금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의 포니가 모든 면에서 지금의 자동차와 비견할 수준은 아니지만 현대차의 기업 역사나 한국 근현대사의 의미로 볼 때 계산이 불가능한 가치를 갖고 있다. 현대차는 그러나 자신들이 개척하고 일궈낸 역사적 가치에 소홀했다. 1967년 창업해 5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포니뿐만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가 큰 모델의 소위 1호차가 전무할 정도로 스스로 해리티지를 부정하고 단절시켰다.

오죽하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등장하는 포니를 남미의 어딘가에서 가져와야만 했을까. 포니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폭스바겐 골프가 8세대까지 이어지면서 고유의 헤리티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또 다른 유수의 기업이 브랜드의 정통성을 가진 모델은 단절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포니는 존재해 있어야 했다.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