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망할까, 절벽으로 질주하는 대한민국 자동차 노조

  • 입력 2019.12.24 09:43
  • 수정 2019.12.24 09:52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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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장 공시가가 1조1641억원이다. 소를 키우든 농사를 짓든 경영진이 고민하라" 믿기 힘들겠지만 르노삼성차 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발표한 성명서의 내용이다. 참여율이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하나밖에 없는 공장 땅값까지 들먹이면서 노조는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가 어찌 됐든 공장을 팔아서라도 임금을 올려 달라는 얘기로 들린다.

한국지엠도 어수선하다. 창원공장이 1교대 전환에 인력 감축을 하면서 비정규직 대량 해고가 우려되는 가운데 노조가 파업으로 대응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회사는 임시 휴업으로 맞서고 있다. 기아차도 임금협상을 둘러싼 부분파업으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와 경영진이 절박감을 호소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연간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고 당장 생산할 차가 없어 공장이 멈췄는데도 임금을 올려 달란다.

2019년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의 구조조정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큰 규모로 이뤄졌다. 미국과 영국, 독일에서 8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GM, 포드, 재규어 랜드로버, 아우디, 다임러, BMW, 혼다 등도 인력을 줄이고 공장문을 닫고 있다. 완성차 업체의 구조 조정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의 개발을 위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노조는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경기, 지역적 특성에 따른 자동차 수요의 일시적 변화만으로는 함부로 인력을 줄이거나 공장문을 닫지 못한다. 현대차 그룹이 최근 2025년까지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 6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GM과 르노도 수조, 수십조 원을 투자해야 한다. 한정된 수요로 수익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미래 생존을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하고 이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인력 감축과 공장 폐쇄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이다.

모기업인 GM과 르노가 공장을 팔아서 임금을 올려 달라고, 노조 집행부의 기 싸움, 월급이 적다며 툭하면 파업하는 공장은 눈엣가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두고 보는 것은 정부의 공적 자금 투입, 지역의 특성, 복잡한 산식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덕분이다. 자동차 생태계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성장 동아줄인 신흥 경제국의 경기 부진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래 자동차의 핵심 경쟁력이 될 전기차와 자율주행, 커넥티드 분야에 대한 투자 부담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수요는 멈추고 투자 부담은 늘어나겠지만 대응하지 않으면 망하는 뻔한 공식이 보인다. 그런데도 평균 연봉이 9000만 원대를 넘는 기아차 노조는 어렵게 도출된 잠정합의안을 무산시키더니 잘 나가는 모델만 꼭 찍어서 부분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조 집행부의 세 과시가 이번 부분 파업의 이유라는 얘기도 나온다.

당장 공장 문을 닫고 철수해도 할 말이 없는 르노삼성차 부산 공장과 한국GM 노조도 지금의 이 절박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싶다. 생산 물량 배정에 사활이 걸려있는 처지인데도 파업이나 고임금 요구가 계속되면 '물량 배정을 줄이겠다'는 경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한국GM이 군산 공장을 전격 철수한 것과 같이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서 발을 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조가 그런 빌미와 명분을 주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이 노조의 파업에도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명분없는 파업에 참여하기 보다는 회사의 경영 상황, 미래의 생존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위기위식을 인식하고 있는 절반의 직원이 있다는 것이다. 쌍용차 노조가 상여금을 반납하자 모기업 마힌드라 앤 마힌드라는 추가 투자를 약속했다. 어디가 먼저 망할지 너무 뻔해 보이는 일이 요즘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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