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거나 감옥에 갈 각오를 하거나' 일상의 전쟁이 된 운전

  • 입력 2019.12.23 10:34
  • 수정 2019.12.23 16:07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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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의 고삐를 늦추면 안 된다. 오늘도 만만히 볼 상대는 없다. 한 순간 실수로 돌아오지 무지개 다리를 건널 수도, 평생을 감옥에서 썩을 수도 있다. 자동차 시동을 걸어 잠시 예열을 하고 주차장 입구에서 큰 도로까지 천천히 걸어 본다. 경사가 있고 종일 그늘이 진 탓에 여기서 당한 사람들이 꽤 많다. 

다행히 큰 도로로 이어지는 노면 모두 바싹 말라 있다. 운전대를 잡고 몇 번 긴 호흡을 했다. 지금부터 목숨을 건, 남은 인생이 걸린 '죽음의 운전'을 시작해야 한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오늘 긴장감이 더하다. 이제 겨우 주차장을 빠져 나왔을 뿐인데 어제 뉴스가 떠 오르면서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의도에서 싱크홀이 발생해 1명의 작업 인부가 숨졌고 고양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 했단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싱크홀이 2015년 이후 매년 1000건 넘게 발생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딛고 있는 이 도로가 갑자기 내려 앉으면 나도 별수 없이 황천길이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 갔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월요일인 데다 싱크홀 뉴스로 긴장감이 더해진 탓인지 평소 15분이면 충분했던 서울외곽순환도로 진입에 오늘은 30분 이상이 걸렸다. 터널 입구, 요금소 입구, 진입로가 있는 곳마다 지체와 정체가 반복됐고 갓길이며 그 틈새로 끼어드는 얌체들과의 살기어린 전쟁도 어김없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제부터 사무실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의 출구까지는 소리없는 암살자 블랙 아이스에 집중해야 한다. 도무지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는 블랙 아이스는 도로 위 모든 상대에게 치명적이다. 한 번에 수십의 인명을 다치게 하고 수십 대의 자동차를 박살 낸다. 도로에서 맞닥뜨리는 적 중 가장 살벌하고 치명적인 놈이다. 

얼마 전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친 상주-영천고속도로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지워지기도 전에 오늘 아침 우리나라 그리고 전 세계는 또다시 블랙 아이스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는 5중 추돌이 있었고 미국 버지니아주 요크 카운티의 한 고속도로에서는 블랙 아이스 때문에 무려 63중 추돌이 발생했다고 한다.

고속도로 출구를 빠져나갈 때까지 운이 좋았는지 별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매일 반복되는 죽음의 레이스에 새롭게 등장한 변수와 싸워야 한다. 두 번째 교차로부터 시작되는 스쿨존. 아직은 숨을 죽이고 있지만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새로운 법이 시행되면 단 한 번의 실수로 평생 감옥살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억울한 운전자가 없도록 하고 과속 방지를 위한 이런저런 시설도 마련된다고 하지만 럭비공처럼 튀는 아이들을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규정 속도를 지키고 주변 경계를 철저하게 했어도, 일단 사고가 나면 정상 참작이고 뭐고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한다.

횡단보도가 아니어도 스쿨존 안에서 아이를 다치게 하면 무조건 3년 이상 감옥에 가야 하고 사망사고를 내면 무기징역, 평생 감옥 신세다. 그러니 민식이법 시행 전 이곳을 아예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지리적 특성, 아이들의 보행 특성, 위험 지역, 돌발 상황이 예측되는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회사에 도착해서야 안도의 숨이 쉬어지고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갑자기 도로가 주저앉는 일도, 블랙 아이스의 저격을 피하고 내 잘못이 아니어도 감옥에 가야 하는 억울한 일도 당하지 않았다. 죽음의 운전을 시작하기 전 배웅에 나섰던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빠는 매일 이렇게 목숨을 걸고 운전을 한단다. 그래야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단다. 그러니 '오늘도 무사히' 온종일 기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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