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의 의미, 올드카 죽이는 미세먼지 정책 '등록제가 해답'
지나간 것의 의미, 올드카 죽이는 미세먼지 정책 '등록제가 해답'
  • 김이제 기자
  • 승인 2019.11.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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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국 지자체가 특단의 조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장 앞장서는 건 인구 천만의 수도 서울. 서울시는 당장 다음 달부터 내년 3월까지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겨울동안 도심 ‘녹색교통지역’에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한다. 국내요인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 중 자동차, 특히 최신 자동차보다 몇십 배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노후 차량들의 책임이 크다는 논리다. 서울시가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기도, 인천시 등 수도권은 물론 타 지자체들도 서울시를 벤치마킹한 노후차량 운행제한 정책을 내년 상반기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지독한 미세먼지에 고통받던 시민들이라면 환영할 일이겠지만, 이제 갓 태동하기 시작한 올드카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공들여 복원하고 소장한 올드카가 당장 며칠 뒤부터 서울 도심을 드나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세먼지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수도권 전역에서 운행이 전면 금지될 수도 있다.

1987년 이전 기준이 적용된 휘발유·LPG차와 2002년 7월 1일 이전 기준이 적용된 경유차는 모두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이다. 통계에 따르면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중 266만 대는 DPF 및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장착되지 않은 노후경유차, 나머지 3만 대는 삼원촉매가 없는 노후 휘발유 및 LPG차다. 휘발유차는 흔히 ‘올드타이머’라 불리는 차령 30년 이상, 이제 갓 클래식의 반열에 들어선 차들이, 경유차는 고작 차령 20년 수준의 ‘영타이머’들이 대부분 운행 제한 대상이다.

차주들은 “차를 개조해서라도 계속 타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애당초에 지금과 같은 배출가스 규제가 없던 시기에 개발된 차들이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촉매나 DPF 등을 설치하면 성능 저하는 물론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 그걸 감수하고 장착을 하려 해도, 국내에 많이 팔리지 않은 차량의 경우 적합한 부품이 개발돼 있지 않아 돈을 주고도 개조할 수 없는 실정이다.

1985년식 벤츠 클래식카를 소유주는 “동급 신차보다 많은 비용을 들여 힘들게 구하고 복원했는데, 이제는 시한부 환자가 된 기분으로 운행제한 조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읍소했다. 그는 또 “차고지가 서울 종로구인데, 이대로 운행제한이 시작되면 앞으로 영영 집 밖에도 나갈 수 없는 거냐”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이들 소수의 올드카 운전자들을 위해 미세먼지 대책을 보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미세먼지로 인한 우리나라의 경제적 손실은 자그마치 4조 원에 달했고,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사망자가 연간 1만 명이 넘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해외요인이 국내요인보다 더 크다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연식만으로 차를 판단하는 일차원적인 기준을 적용한 나머지 오래된 차가 갖는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간과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된다. 자동차는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한 세대의 기술, 디자인, 문화, 경제가 결합된 시대정신의 발현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보존상태가 뛰어나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자동차는 예술품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 흔히 그런 차를 ‘클래식카’라고 부른다. 꼭 클래식의 수준이 아니더라도, 잘 관리된 올드카들은 도로 위 생태계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우리 교통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국내에서도 적잖은 사람들이 올드카 문화를 영위하고 있다. 이들은 신차 못지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과거의 명차를 구입해, 또다시 시간과 비용, 노력을 투입해 차를 복원하고 있다. 행여 비라도 맞을까 1년에 몇 번 운행하지도 않는 이런 차들이 미세먼지 대책 탓에 우리네 거리를 달릴 수 없다면, 이는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닌 문화적 황폐함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오염물질을 내뿜는 단순 노후 차량과 차주의 정성이 담겨 소장가치 높은 올드카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다른 나라의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올드카에 대한 등록제도를 실시하는 것이다.

자동차 문화가 성숙한 독일의 경우, 차령 30년 이상의 올드카 중 관리 상태가 좋은 차량을 선별해 ‘역사적 차량’으로 등록할 수 있다. 이들은 알파벳 ‘H’로 끝나는 전용 번호판을 발급받고 각종 혜택을 누린다. 배기량과 연식에 상관없이 저렴한 자동차세를 내고, 삼원촉매나 DPF를 의무 장착할 필요도 없다. 노후경유차가 들어갈 수 없는 도시의 녹색지역도 통행 가능하다. 대신 이런 차량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차량의 관리 상태가 충분히 좋아야 하고, 사고나 튜닝 이력이 많아서도 안 된다.

미국에서는 주 마다 ‘히스토릭 카’ 기준을 설정하고, 차량 20~30년 이상 된 차량 중 관리상태가 뛰어나고 소장가치가 있는 차에 히스토릭 번호판을 발급한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자동차세, 정기검사 등 일부 의무를 감면받는 대신 차량의 컨디션을 꾸준히 유지해야 하며 연간 주행거리가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영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드카에 대해 별도의 관리체계를 만들면 미세먼지 대책과 올드카의 가치가 상충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공인된 기관을 통해 차량의 관리상태를 점검한 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운행 제한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대신 이런 차량들은 예외적으로 운행을 허락해주는 만큼 연간 주행거리에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제도 악용을 예방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까지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올드카가 가진 문화적 가치에 공감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그러나 번거롭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올드카들을 일괄적으로 운행 제한 대상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잡초를 없애겠다며 꽃이 섞여 핀 들판에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한편 한국인들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좋아한다. 낡은 것, 오래된 것은 가능한 빨리 청산하고 새로운 것을 따르는 풍조가 강하다. 그러나 문화의 깊이는 송구영신보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 나온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법이다. 국민 건강 보호와 자동차 문화의 성숙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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