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産 아포칼립스' 급기야 터진 닛산 철수설은 시작에 불과

  • 입력 2019.09.10 10:03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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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자신의 차를 부숴버렸고 어디선가는 테러를 당했다. 앞자리가 세 개의 숫자로 바뀐 번호판을 단 차를 만나면 침을 뱉겠다는 협박도 나왔다. 무서워서, 매국노라는 낙인, 혹은 눈치가 보여 일본산 자동차를 사고 타는 것이 두려운 세상이 됐다.

급기야 닛산이 한국 철수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일본에서 나온 얘기를 영국 매체가 전했다. 르노삼성차 부산 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물량을 빼겠다는 말도 들어 있다. 이 곳 반응을 떠보기 위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이라면 위협적이다.

2300여 명이 일하고 있는 부산공장은 닛산이 맡기고 있는 생산물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작년 생산한 21만여 대 가운데 절반가량인 10만 7000여 대의 닛산 로그가 부산공장에서 만들어졌다. 닛산이 발을 빼면서 부산공장을 곱게 놔둘 것으로 보면 오산이다.

닛산은 글로벌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부산 공장에서 공급받는 로그를 연간 10만대에서 지금은 6만대로 줄였다. 철수라는 치욕을 당하면서 더 큰 비용을 부담할 이유가 없으니 그럴 가능성이 크다. 르노와 닛산의 동맹 관계도 예전처럼 견고하지 않아 닛산이 합당한 명분을 실어 싫다 하면 르노도 힘을 쓰기 어렵다.

닛산뿐이겠는가. 또 다른 일본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는 한 임원은 "차가 안 팔리면 더 팔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하는데 이건 그럴 상황도 아니다. 손 놓고 바라만 보는 것이 더 두렵다. 이러다 우리도 철수 얘기가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매장에서는 회사 출입을 뒷문으로 하는 직원도 있단다.

또 다른 임원은 "내 차, 아파트 지하 주차장 깊숙한 곳에 세워놓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렇게 심각할 것, 오래 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일본 브랜드의 자동차 판매는 반 토막이 났다. 7.7% 증가라는 기이한 실적을 기록한 렉서스를 빼고 혼다가 80.9%, 닛산은 인피니티를 합쳐 77%, 토요타는 59%가 줄었다.

지금 일본 브랜드의 고민은 쌓여있는 재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있다. 불매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상반기에  수입차 시장 점유율을 20%대까지 끌어 올리면서 하반기 물량 확보에 공을 들였고 따라서 어느 때보다 많은 재고가 쌓였다. 그런데도 할인 판매, 이벤트 같은 프로모션은 눈치가 보여 꿈도 꾸지 못한다.

조금 전 그 임원은 "딜러 얘기로는 절반 가격에 후려친다고 해도 새 번호판으로 불매운동 이전과 이후가 명확하게 갈리니까 사려는 사람이 없단다. 이게 해를 넘기면 악성 재고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닛산 말고도 다른 브랜드도 철수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들 브랜드가 직접 고용한 직원 수는 300여 명이 안되지만, 전국 딜러에서 일하고 있는 영업사원과 서비스 직원, 탁송과 튜닝 등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을 모두 합치면 수천 명, 닛산이 철수하고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에서 발을 빼면 더 많은 사람이 바닥에 나 앉을 처지가 된다.

또 다른 일본 브랜드의 임원은 "바깥 걱정만 할 때가 아니다. 반도체 수출이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지금 내 나라 안방에서 일본산이라는 이유로 테러를 당하고 불매 시위를 바라보며 먹고 사는 걱정에 밤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렇게 까지야'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현대차도 일본에서 장사가 안돼 철수한 이력이 있고 쉐보레도 유럽에서 철수한 적이 있다. 상하이기차가 쌍용차에서 단물 빼고 눈 하나 껌벅이지 않고 한국에서 철수했듯이 안 되는 일에 발을 빼기 쉬운 것이 자동차 업계다.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자동차여서가 아니라 '일본산' 모든 것의 '아포칼립스'가 몰고올 후유증을 생각하면 불매운동도 옥석을 가려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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