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대의 지프가 행진을 했다, 오직 한 명의 의인을 위해

  • 입력 2019.05.20 10:30
  • 기자명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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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는 지난주 조금 특별한 자동차 모임이 있었다. 무려 600대가 넘는 지프들이 한데 모여 덴버 시내를 행진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지프 동호회가 떼주행을 했거나 또는 대규모 모임을 가진 것 같지만,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지난5월7일 오후(현지시각), 덴버 근교의 하이랜즈 랜치 STEM스쿨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1999년 같은 콜로라도 주 내에서 발생한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이 20주기를 맞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발생한 학교 내 총기 난사로 지역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2명의 총기 난사범이 사건 당시 1850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었던 학교에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기적적으로 인명 피해는 사망 1명, 부상 8명으로 비교적 적었다. 이처럼 인명 피해가 적을 수 있었던 건 몸을 던져 희생한 18세 소년 켄드릭 카스티요(Kendrick Castillo) 덕이었다.

곧 졸업을 앞둔 그는 교실에 범인이 들어와 가방에서 총을 꺼내 들자마자 친구 2명과 함께 총격범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달려드는 과정에서 가슴에 총을 맞았지만, 몸을 던져 범인을 제압한 덕에 다른 학생들은 사건 현장에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다행히 총격범들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보안관들에 의해 제압됐지만, 켄드릭 카스티요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카스티요의 영웅적인 희생은 콜로라도 주의 많은 주민들을 감동케 했다. 특히 평소 그가 1세대 지프 체로키를 타고 오프로드 주행을 즐기는 등, 열렬한 지프 마니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를 위한 특별한 추모 행사가 준비됐다. 현지 보안관과 경찰들은 카스티요의 장례식에서 그가 생전 사랑했던 지프들의 행진을 기획했고, 지역 내 지프 동호회에 소집을 요청했다.

카스티요가 활동하던 지역 지프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콜로라도 주와 인근 지역 지프 및 오프로드 동호회에 이런 소식이 알려졌고, 이들은 지프 가족의 일원이었던 카스티요의 영웅적 희생을 기리고 그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최선의 예를 다 하기로 결정했다.

카스티요의 장례식이 치뤄진 5월 15일(현지시각), 덴버 시내에 지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 240대의 지프가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참가자가 계속 늘어 무려 600대에 달하는 지프가 덴버에 도착했다. 이들을 포함해 카스티요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2000명에 달했다.

지프들은 차 곳곳에 카스티요를 기리는 문구를 적고 성조기를 휘날리며 장의차 행렬을 호위했다. 이 행렬에는 그가 생전에 몰던 체로키도 포함돼 있었다. 덴버에서 일반인의 장례식을 위해 차량 행진이 치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켄드릭 카스티요의 유가족들은 장례식에 참석한 지프 운전자들에게 큰 감사를 표하면서 “켄드릭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며 다시 그 상황이 되더라도 똑같이 희생했을 것”이라며 “아들의 희생을 기리며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에서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동호회가 의사자(義死者)나 순직한 군·경 장병들을 기리기 위한 행진을 종종 벌인다. 지난 2014년에는 전쟁 후유증으로 사망한 전역 군인의 유골이 택배로 유가족에게 전해진다는 소식을 들은 라이더 단체가 무려 3200km에 달하는 거리를 오토바이로 호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삶 속 영웅들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미국 동호인들의 활동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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