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콘셉트카 #3] 대우자동차의 졸작 1999년 'DMS-1'

  • 입력 2019.05.07 08:19
  • 수정 2019.05.07 11:53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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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 No. 1 콘셉트(1994년)

모터쇼의 꽃으로 불리지만 콘셉트카는 난해하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적용될 것이라는 첨단 기술의 실현 가능성까지 해석이 쉽지 않다. 콘셉트카는 판매보다 완성차 메이커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디자인은 물론, 기술의 한계도 콘셉트카에는 없다. 그래서 더 기괴하고 파격적인 콘셉트카가 모터쇼에는 경쟁적으로 등장한다. 소비자가 어떤 트랜드에 관심을 갖는지, 여기에 맞춰 신차 개발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189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세계 최초로 열린 이후 지금까지 콘셉트카가 '모터쇼의 꽃'으로 불리며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 때문에 완성차 메이커는 과욕을 부리기도 하고 그래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한 콘셉트카'도 제법 등장을 했다. 모터쇼에 등장했지만, 브랜드의 무리수가 돋보인 최악의 콘셉트카를 연재한다.

도심형 오프로드 'DMS-1'

2002년 옛 파트너 GM의 손을 다시 잡으면서 대우자동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신진공업으로 출발, GM과의 합작사 GMK를 거쳐 새한자동차 그리고 1983년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꾸는 파란만장한 기업 역사에서 걸출한 콘셉트카가 제법 등장한다.

대우자동차의 첫 콘셉트카로 기록돼 있는 No. 1 콘셉트(1994년, 맨 위 사진)는 미려한 2인승 컨버터블로 지금 어디에 내놔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미려한 디자인을 보여준다. 걸 윙 도어를 사용한 1995년 부크레인(Bucrane), 1996년 Mya Concept, 1997년 이탈디자인과 협업한 카브리올레 콘셉과 조이스터(Joyster)도 시대를 앞섰다.

이들 콘셉트카는 마티즈, 레간자, 레조 등 수 많은 양산 차의 토대가 됐음은 물론이고 대우자동차가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이탈디자인 등 유수의 디자인 회사와 협력하면서 내공을 키운 덕이다. 그러나 대우자동차의 콘셉트카 명맥은 2002년 GM에 인수되면서 끊기게 된다.

1999년 서울모터쇼에 전시된 대우자동차 DMS-1(사진 출처 서울모터쇼조직위원회)

그렇다고 대우자동차 콘셉트카 모두가 박수를 받은 것은 아니다. 199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콘셉트카 'DMS-1'은 당시의 일반적인 차량 비율을 무시한 장난스러운 외관에 용도마저 분명하지 않은 컨셉으로 혹평을 받았다. 해외에서는 "금방이라도 땅을 뚫고 들어갈 기세의 굴착기 같다"라는 혹평도 내놨다.

대우자동차는 DMS-1의 모티브가 '멧돼지'라고 설명했다. 그런 느낌을 받기가 쉽지는 않지만 논밭을 헤집고 다니며 농사를 망치는 못된 성격으로 보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DMS-1을 "뒤로 갈수록 치켜 올라간 캐릭터 라인과 근육질의 차체는 도시보다는 오프로드에 어울린다"며 높은 완성도를 칭찬한 국내 매체도 있기는 했다. 

또 "DMS-1이 일본에서 디자인하고 제작된 차다. 제1회 서울모터쇼부터 국내 메이커는 일본에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터쇼만을 위한 차라면 많은 돈을 들여 외국에서 만드는 것은 낭비적인 일이다. 양산차와 관련이 있는 차라면 정보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우자동차의 기술력이 일본으로 유출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을 일이다. 그런데도 DMS -1에는 주목할 만한 혁신적 시도가 있었다. 덩치 큰 모델이 오프로드를 지배하던 시절에 경형 오프로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추구했고 이를 위해 4WD를 장착했다. 당시 사륜구동이 장착된 가장 작은 사이즈, 여기에 2도어 또 C필러의 탈부착도 가능해 테일게이트까지 개방을 하면 세미 컨버터블 픽업트럭으로 변신을 했다.

파워트레인의 수치는 경형 오프로드로서의 기능적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배기량 800cc로 제한을 받던 경차 마티즈의 엔진을 튜닝해 65마력의 검소한 최고 출력과 7kg.m대의 낮은 최대 토크를 냈고 여기에 16인치 휠이 적용됐다. 당시 흔했던 '신작로' 쯤은 무난하게 오갔을 법하다.

아쉽게도 'DMS-1'의 흔적은 많아 남아 있지 않다. 2002년 점령군처럼 대우자동차를 접수한 당시 GM대우가 모든 흔적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GM의 어느 곳에도 대우자동차의 역사, 자취는 남아있지 않고 찾아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자료가 부실하고 여기 소개하는 내용과 이미지 역시 외국의 자료 사이트에서 무단 전제가 가능한 것들로 채워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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