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콘셉트카 #2, 과욕이 낳은 참사 '기아차 KCV-II'
최악의 콘셉트카 #2, 과욕이 낳은 참사 '기아차 KCV-II'
  • 김흥식 기자
  • 승인 2019.05.01 21: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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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V-II

모터쇼의 꽃으로 불리지만 콘셉트카는 난해하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적용될 것이라는 첨단 기술의 실현 가능성까지 해석이 쉽지 않다. 콘셉트카는 판매보다 완성차 메이커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디자인은 물론, 기술의 한계도 콘셉트카에는 없다. 그래서 더 기괴하고 파격적인 콘셉트카가 모터쇼에는 경쟁적으로 등장한다. 소비자가 어떤 트랜드에 관심을 갖는지, 여기에 맞춰 신차 개발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189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세계 최초로 열린 이후 지금까지 콘셉트카가 '모터쇼의 꽃'으로 불리며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 때문에 완성차 메이커는 과욕을 부리기도 하고 그래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한 콘셉트카'도 제법 등장을 했다. 모터쇼에 등장했지만, 브랜드의 무리수가 돋보인 최악의 콘셉트카를 연재한다.

정체성이 궁금한 '기아차 KCV-II'

KCV-II

동의할 수 없다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아차가 2002년 파리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한 'KCV-II'는 이런저런 매체가 지목하는 최악의 콘셉트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KCV-II 뿐만 아니라 기아차가 이전과 이후의 모터쇼에 등장시킨 KCV-I, KCV-III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KCV-II에 유독 혹평이 많았던 이유는 지나친 과욕으로 정체성을 찾지 못한, 찾을 수 없었던 것이 결정타였다. 기아차 유럽 디자인 센터의 작품인 KCV-II는 낮은 차체의 전고와 쿠페 스타일의 루프 라인에 픽업트럭, 해치백 여기에 SUV 특성과 기능까지 죄다 버무려 놨다. 

기존의 것들을 이것 저것 뒤섞어 종류별 자동차를 한데 묶어 놓은 그래서 창조성이 전혀 없는 KCV-II는  전면의 라디에이터 그릴에 두툼한 손잡이가 까닭 없이 달려 있고 더 두툼한 데다 리듬까지 살린 측면의 캐릭터 라인이 범퍼에서 시작해 후면 테크와 도어까지 연결돼 있다.

KCV-II

기울기를 극대화한 전면 윈드 실드, 이걸 타고 흐르는 루프라인, 또 엄청난 볼륨의 캐릭터 라인을 만들어 정체가 뭔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기 힘든 외관을 갖고 있다. 앞쪽 휠의 하우스를 생략한 것, 4인승 시트를 갖고 있지만 도어는 위로 열리는 날개문은 2개만 달아놨다.

후면에는 널찍한 테크를 설치했다. '쿠페형 SUV 픽업트럭'이라고 해도 좋을 디자인이다. 기아차는 KCV-II가 활동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콘셉트라고 강조했다. 파워 트레인은 3.5ℓ V6가 탑재됐고 요즘 글로벌 자동차 업체가 선호하는 '다용도 플랫폼'이 사용된 것도 특징이다.

코드명 KM으로 명명된 이 플랫폼은 SUV는 물론 소형 해치백과 CUV 등 다양한 차종과 보디 스타일의 공유가 가능했다. 충분히 많은 에어백, 타이어 압력 경고 센서, 액티브 헤드 레스트, 긴급 제동 등 당시로써는 첨단으로 볼 수 있는 안전 시스템도 탑재됐다.

KCV-II

열쇠 없이 도어를 여닫을 수 있는 리모트키, 위성 내비게이션, 외부 기기와 호환이 가능한 오디오 입출력 장치로 그때 막 대중화가 시작된 MP3 음악을 즐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인지 센터페시아에는 초대형 스피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극도로 단순한 클러스터, 최고급 소재의 가죽을 사용했지만 실내 전반은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이다.

혹평을 받기는 했지만 KCV-II는 프랑크푸르트 기아차 유럽 디자인 스튜디오 사내 공모에서 최우수작을 받아 세상에 등장한 의미있는 모델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아차가 2001년 내 놨던 KCV-I, 그리고 KCV-II 이후 2003년 공개한 KCV-III는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KCV-I(사진 위) KCV-III(사진 아래)

그랬던 기아차가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금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자동차 디자인으로 불리는 아우디 TT를 창조한 피터 슈라이어(당시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를 영입한 이후부터다. 2006년 등장한 쏘울 콘셉트카, CEE'D, 2007넌 KND-4와 KEE 콘셉트 등은 양산으로 이어져 지금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나중의 얘기지만 호사가들은 "2006년 기아차로 자리를 옮긴 피터 슈라이어가 디자인 역량을 높이기 위해 고생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정의선 현대차 수석 부회장이 당시 그를 전격 영입해 "단번에 기아차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패밀리룩을 완성하고 디자인 경영이 왜 필요한지를 입증한 것"은 '선견지명'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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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aegada 2019-05-07 19:27:32
헐 ~ 저 디자인 89년말 아니면 90년초에 내가 디자인한거랑 비슷해요. 그때 아시아자동차 근무할때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