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고 한 곳이 망해봐야 한국 자동차 산업이 흥한다.

  • 입력 2019.03.11 08:00
  • 수정 2019.03.11 08:02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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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군산공장은 생산량이 80%에서 50% 그리고 30%까지 줄어들자 지난해 5월 결국 폐쇄됐다.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1만3000여 명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군산 경제의 23%를 책임지고 있던 공장이 23년 만에 문을 닫는 바람에 지금까지 지역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유기견이 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군산 전체가 황폐해졌다고 한다. 기억하겠지만 군산공장은 지난해 2월 공장 폐쇄가 결정되기 직전 가동률이 20% 수준에 불과했다. 2조 원 가량의 적자가 쌓였지만, 직원들은 평균 임금의 80%를 휴업수당으로 챙겼고 덕분에 약 8700만 원 수준의 연봉을 공장 폐쇄 직전까지 유지했다.

노조는 공장 폐쇄 결정에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무시했다. 적자 경영의 책임을 근로자에게 전가했다"라며 강력 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주인이 없는, 굳게 문을 닫아 버린 공장 앞에서 그런 주장은 공허했다. 매일 출근하던 직장과 8700만 원대의 연봉, 지역 어느 업종의 노동자보다 여유로웠던 그들의 일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8일로 정한 기한까지 노사가 2018년 임금 및 단체 협약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한 르노삼성차 부산 공장의 앞날과 한국GM 군산공장의 지금이 묘하게 닮아 가고 있는 듯하다. 르노삼성차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기본급 인상에 사용자 측이 보상금 지급을 제시했지만, 집행부는 느닷없이 생산 라인 속도를 늦추고 전환 배치와 같은 인사 경영권을 노조와 합의해 시행 해 줄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프랑스 국영 기업 르노가 전세계 어느 공장에서 듣도 보도 못한 노조의 경영권, 인사권 관여 요구를 들어 줄 리 만무하다. 결국 르노삼성차는 지난해 6월부터 9개월 동안 20차례 이어져 왔던 교섭을 향후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끝내야 했다. 부산공장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닛산 브랜드 로그의 위탁생산이 자칫 끓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르노는 마지막 기한으로 정한 8일까지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부산 공장의 신차 생산 배정량을 조절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르노삼성차는 르노의 경고가 소량 생산은 효율성이 낮기 때문에 사실상 닛산 로그의 신차 생산을 더 이상 부산 공장에 맡기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다.

신차 생산 배정은 연간 생산 능력 20만대의 절반인 10만대를 로그 생산으로 연명해왔던 부산 공장의 사활인 걸린 문제다. 2012년 14만대 수준으로 떨어졌던 부산 공장의 생산 대수는 로그 위탁 생산을 시작한 2014년부터 꾸준하게 늘기 시작해 2017년 26만 대 수준으로 급증해 르노삼성차의 황금기를 연 효자 모델이다.

최근의 국내 판매 부진으로 르노삼성차는 신차 생산에 대한 경영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따라서 르노가 신차 생산물량을 더 배정하지 않거나 줄인다면 상황이 매우 심각해진다. 더 큰 문제는 위탁 생산이 중단되고 수입차인 메르세데스 벤츠보다 못한 국내 판매로 부산 공장의 연간 생산 대수가 5만 대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르노가 이를 두고 볼 리 없다는 것이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이고 노조는 투쟁으로 맞설 것이며 금속노조의 총파업이니 뭐니 하는 상황으로 시끄러워지고 결국 철수니 폐쇄니 하는 얘기가 나올 것이고 어느 날 부산 경제가 휘청거리게 됐다는 지역 신문을 보게될 것이 뻔하다. 결렬된 협상이기는 했지만 8일 협의에서는 뭔가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 사용자 측의 얘기다.

노조가 요구한 기본급을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합의가 어느 정도 진행됐지만 추가 인원 200명 투입, 생산 라인 속도 하향 조절, 전환 배치 등에 대한 인사 경영권의 합의 전환 요청이 느닷없이 나오면서 결국 파국을 맞게 됐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자동차 쪽 예전의 노사 협상이 막판 결렬됐던 것과 다르지 않은 순서다.

뭔가 풀릴 것 같으면 회사가 절대 받아들이기 힘든 인사나 경영 개입 항목을 제시해 발목을 잡았던 금속노조의 '절대 반지'가 이번에도 등장한 셈이다. 한국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문을 닫게 된다고 해도 막판 합의에 발목을 잡은 '금속노조'는 여전히 건재했고 건재할 것이다.

대신 르노의 전 세계 46개 공장 가운데 3번째로 많은 7800만 원 대의 평균 연봉을 받는 1만2000여 명 직원과 5만여 명의 협력사 직원은 직장을 잃게 된다. 그들의 잘못은 무엇인가. 그래서인지 노사 합의가 기한 내 타결되지 않으면 신차 생산량 배정을 하지 않겠다는 르노의 으름장이 엄포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솔직히 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어디 하나쯤은 망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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