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낙하물 사고 제로, 유럽의 해법은 밴 타입의 소형 화물차

  • 입력 2019.03.04 08:00
  • 수정 2019.03.04 12:34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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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안시]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500km가량 떨어진 오트사부아의 주도인 안시는 은퇴한 프랑스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다. 거리와 상점에는 그래서인지 다른 어느 곳보다 노인들이 많다. 주말에는 도시의 표정이 달라진다. 알프스가 쉬지 않고 흘려보낸 청정수로 가득 채워진 안시 호수 주변으로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위스, 이탈리아 관광객까지 몰려와서다. 도시에는 활력이 넘치고 호수를 둘러싼 도로는 주말이나 휴가철 그만큼 차량이 넘친다.

대부분 편도 1차로의 좁은 도로에 차량이 몰려도 심각하게 볼만한 정체는 없다. 비보호 좌회전, 회전 교차로가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두르거나 누구를 재촉하지 않는 유럽인 특유의 심성도 큰 몫을 한다. 수동변속기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오펠 크로스랜드 X의 시동이 꺼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당황하는 동양인에게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는 사람도 없다. 포근한 미소나 괜찮다는 손짓이 대신한다. 거북이 주행을 하는 답답한 상황인데도 추월을 하는 차량도 볼 수 없었다.

오래된 도시여서 공간이 부족한데도 정해진 구역이 아닌 곳에 주차한 차량도 볼 수가 없다. 관리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관광객이 타고 온 차량이 좁고 복잡한 구도심으로 밀려 들어왔지만 주변을 몇 번이고 돌면서 빈자리를 찾고서야 주차를 한다(이 경쟁은 치열하다). 한적한 주택가의 이면도로에서도 불법 주차한 차량은 볼 수 없었다.

2016년 기준 OECD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의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5.4명(2016년)으로 우리나라 8.1명(2018년)보다 현저하게 낮다. 안시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 이유를 앞서 얘기한 것들에서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안시를 포함한 유럽의 도로에서는 만나기 힘든 것이 또 있다. 적재함이 드러나 있는 화물차다.

안시역 앞 노천카페에서 우리의 포터나 봉고처럼 적재함이 드러난 소형 상용차를 찾아봤지만 단 한 대도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은 르노 마스터, 벤츠 스프린터, 폭스바겐 멀티밴, 푸조 엑스퍼트나 박서와 같은 밴형이었다. 조금 더 큰 화물차도 대부분 탑을 갖추고 있었다. 구도심에 있는 안시의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량도 예외 없이 밴형이다. 아슬아슬하게 짐을 싣고 달리는 소형 화물차에 익숙한 데도 보기가 좋았고 도심 풍경도 정리된 느낌을 줬다.

밴형 화물차가 쓰이는 용도는 다양했다. 안시 호수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캠핑카 대부분도 르노 마스터와 같은 밴형 화물차를 개조한 것들이다. 병원 구급차 그리고 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특장차, 긴급차량, 이동식 상점, 후드 트럭도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가장 자주 본 소형 상용차는 르노 마스터와 트래픽이었다. 1980년 출시된 1세대 마스터도 가끔 눈에 들어왔다.

마스터는 화물용뿐만 아니라 승합 또 아주 다양한 형태의 특장차로도 운행되고 있었다. 푸조나 폭스바겐에서도 마스터 급의 소형 상용차를 판매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은 르노의 마스터다. 작년 10월 국내에 르노 엠블럼을 달고 투입돼 우리에게도 낯이 익은 모델이다.

르노 마스터 출시를 계기로 소형 상용차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는 듯 하다. 밴형의 경우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용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스터의 적재용량이 일반 소형 화물차에 뒤지지 않고 더 안전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르노 마스터는 출시하자마자 초기에 들여온 물량이 동났고 현재 900여 대 이상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마스터의 소형 버스도 곧 들어올 예정이어서 이 시장의 판매 경쟁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1t 화물차로만 치부됐던 소형 상용차 시장이 제법 볼만한 스타일에 풍부한 사양이 곁들여지고 다양성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화물칸에 짐을 가득 싣고 불안하게 도로를 달리는 소형 화물차라는 얘기도 있다. 따라서 도로 낙하물 사고가 전무하다시피하고 따라서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없는 유럽과 같아지려면 적어도 소형 화물차는 밴형이 정답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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