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저공해라더니' 경유세 인상 가능성에 차주들 분통

  • 입력 2019.02.28 16:54
  • 수정 2019.02.28 17:19
  • 기자명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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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 저공해차라며 디젤차 구매를 장려하더니, 이제는 미세먼지 대책이라며 경유값마저 올리면 소비자가 입는 피해는 누가 보상해줍니까?” 2014년 7월 BMW 3시리즈 GT 디젤차를 구입한 K씨는 경유값이 인상될 수도 있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의 ‘디젤차 죽이기’ 정책에 디젤차 차주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추세다.

경유세 인상 권고에 디젤차주 불안감 고조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26일 발표한 ‘재정개혁보고서’를 통해 경유세 인상을 권고했다. 미세먼지 저감과 환경보호를 위해서라는 게 그 이유다. 강병구 재정특위 위원장은 이날 마지막 재정개혁특위 전체회의 후 브리핑에서 “에너지원마다 환경오염 등 사회적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 가격을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100:85 수준인 휘발유:경유 상대가격 차이를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휘발유 유류세를 낮추거나 경유 유류세를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재정개혁특위의 활동 목적이 복지 재원 확충을 위한 증세 방안 마련이었던 만큼 휘발유 유류세를 인하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없어, 사실 상 경유 유류세의 인상을 권고한 셈이다. 정부가 이 권고를 받아들일 경우 경유값 인상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문제는 경유세 인상이 실질적인 오염물질 저감 효과는 미비한 반면 차주들의 부담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17년 국책연구기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 대비 120%, 170%까지 인상되더라도 미세먼지 저감 효과는 1.2%, 2.8%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운행 중인 디젤차 중 상당수가 생계형 상용차로 경유세가 인상되더라도 운행을 줄일 수 없는 데다, 중국 등 국외 요인이 미세먼지 발생 원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유류세를 인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유세가 인상될 경우 디젤차 차주들의 유류비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휘발유와 경유 상대가격이 1:1이 되도록 경유세를 인상할 경우 단순 계산만으로도 차주들의 유류비 부담이 약 17% 증가한다. 특히 월 수백 리터의 경유를 사용해야 하는 화물차나 버스 등 유통·운수 업계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 화물차를 운전하는 P씨는 “유류비가 오르면 당연히 운송비도 오를 것”이라며 “자가용 운전자들이야 전기차라도 살 수 있지만, 우리 같은 화물차 운전자들은 대체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하루아침에 ‘환경파괴자’ 된 ‘저공해차’

디젤차 차주 상당수는 이러한 ‘디젤차 죽이기’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말 바꾸기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정부는 2015년 8월 31일까지 출고된 유로6 디젤차를 저공해자동차 3종으로 인정하고, 각 지자체에서 저공해차 스티커를 발부해 공영주차장 할인, 혼잡통행료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사실 상 디젤차를 저공해차라고 홍보하며 구매를 장려한 셈이다.

그러나 2015년 디젤게이트, 2016년 인증서류 조작 사태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정부의 태도는 돌변했다. 디젤차의 질소산화물과 분진 배출을 문제 삼으며 디젤차를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공론화시킨 것. 이어 저공해차 기준 강화를 통해 사실 상 디젤차가 저공해차 인증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지난 해 말에는 기존에 저공해차 인증을 받은 디젤차들에 대해 인증을 취소하고 혜택을 폐지했다.

그러나 차주들은 “디젤차의 오염물질 배출량은 이미 차를 인증할 때부터 알 수 있는 내용들인데, 같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차가 하루아침에 저공해차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차가 될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저공해차라고 인증한 것을 믿고 샀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정부 입장이 바뀌면서 ‘사면 안 될 차를 산 사람’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K씨는 “불과 5년 전에 저공해차 인증을 받고 각종 혜택까지 누렸는데,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디젤차는 나쁜 거 아니냐’며 손가락질한다”며 “애초에 저공해차가 아니었다면 이 차에 저공해차 인증을 잘못 내 준 담당 공무원을 질책해야지, 왜 그걸 믿고 산 소비자들이 혜택을 빼앗기고 차량 가치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모두 떠안아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여기에 환경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유세까지 인상되면 ‘클린 디젤’이라서 산 차를 졸지에 ‘환경부담금’까지 물면서 타게 생겼다며 K씨는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디젤차에 모든 화살을 돌리는 정부 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디젤차가 여전히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휘발유차보다 적은 데다, 최신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시킨 차들은 오염물질 배출량이 노후경유차의 수십 분의 1에 불과한데도 모든 경유차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전기차나 수소차 같은 미래 친환경차의 보급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전면적 상용화에는 어려움이 많다”며 “최신 디젤차의 오염물질 배출량은 휘발유차와 비슷한 데다 디젤차는 산업현장에서 꼭 필요함에도 미세먼지 문제의 모든 책임을 디젤차 차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모든 디젤차에 대한 징벌적 유류세 인상보다는 오염물질 배출이 많은 노후경유차의 효과적 교체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대기환경 개선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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