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르노삼성, 신차가뭄·판매감소·노사분규 ‘삼중고’

  • 입력 2019.02.26 09:01
  • 수정 2019.02.26 09:32
  • 기자명 김주영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노삼성차가 노조 파업 장기화와 판매 부진, 그리고 이를 털어낼 신차 부재라는 삼중고에 빠졌다. 특히 노사 상생의 모범기업으로 불렸던 회사가 출범 이래 최장기간 파업으로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극단적 부정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설상가상 르노 본사의 로스 모저스 제조총괄 부회장이 부산공장을 찾아 노조가 파업을 지속하면 생명줄과 다름없는 '신차 배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날까지 총 38차례에 걸쳐 누적 144시간에 달하는 최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2000년 7월 프랑스 르노의 식구가 된 이후 완성차 가운데 가장 많은 충성 고객을 바탕으로 견실한 성장을 이어온 르노삼성차가 최대 위기에 빠졌다는 경고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노조 파업 경고하고 나선 르노

르노삼성이 경영위기를 이겨온 데에는 안정적인 노사관계 덕이 컸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마무리해 강성노조 일색인 자동차 업계에서 ‘임단협 모범사례’로 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금속노조 르노삼성차 초대 지회장을 역임한 인사가 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노사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대내외적 경영환경 악화에도 기본급 인상 등을 요구하며 지난 10월부터 38차례 부분파업을 단행했고, 사측에 12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입혔다. 르노삼성 출범 이래 역대 최장기 파업이다.

이에 모기업인 르노 본사의 로스 모저스 제조총괄 부회장이 “파업이 지속돼 신뢰가 무너지고 생산 경쟁력이 약화되면 신차 배정을 못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노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모저스 부회장 방한 다음날에도 파업을 강행했다. 오는 9월 부산공장 생산량의 절반에 달하는 닛산 로그 위탁생산계약이 종료되는 상황에서, 로그를 대체할 신차 배정을 받지 못할 경우 부산공장의 가동율은 50% 미만으로 떨어지고 1교대 근무로의 전환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설령 작년 임단협을 마무리한다 해도, 몇 달 뒤 올해 임단협을 시작하면 다시 노사분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생산 신차의 고갈

2016년 출시된 SM6와 QM6를 끝으로 부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신차가 없는 상황도 문제다. 르노 뱃지가 달린 트위지, 클리오, 마스터 등을 출시했지만 해외 생산분인 데다 볼륨을 기대하기 어려운 틈새 모델이다. SM6가 출시됐음에도 사실상 전 세대 모델인 SM5는 생산이 계속되고, SM3는 유럽에서 신형 메간이 출시됐음에도 후속모델 도입이 요원하다. 결국 현재 부산공장은 SM3, SM3 Z.E., SM5, SM7, SM6, QM6, 닛산 로그까지 7종의 구형 및 신형 모델이 한 라인에서 혼류생산되는 기형적인 상황에 처했다.

문제는 신차가 끊기면서 소비자들의 관심도 이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신차는 그 자체로서 제품 경쟁력 강화 역할도 있지만, 소비자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마케팅적 역할 역시 적지 않다. 그간 르노삼성의 중추를 맡았던 세단 라인업은 물론, SUV 라인업에서도 이렇다 할 볼륨급 신차가 고갈되자 브랜드 경쟁력도 약화되는 형국이다.

의심받는 소비자 충성도

르노삼성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존 모델에 신규 트림을 추가해 이슈를 만들어 냈다. 주로 옵션이 빠진 기본형 트림이나 더 저가형 엔진이 탑재된 모델을 출시하는 식이다. 이 전략은 한때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모델 수명이 끝난 SM3, SM5, SM7 등 3개 차종의 가격을 낮추고 디젤, LPG 모델 등을 출시해 틈새 시장을 공략한 전략은 제법 호응을 끌어내 이들 차종의 ‘차트 역주행’을 보여줬다. 또 QM6에 가솔린 엔진을 추가하고 가격을 대폭 낮춰 한때 1600대 선까지 떨어졌던 QM6의 판매량이 지난 12월에는 4819대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이제 신선함이 떨어졌다. 지난 10월에는 SM6에 SM5용 구형 엔진을 탑재고 옵션을 줄인 대신 가격 경쟁력을 높인 ‘SM6 프라임’이 출시됐지만, 실제 판매 촉진 효과는 미비했다. 오히려 지난 달에는 SM6의 판매량이 1162대로 주저앉았다. 2016년 3월 출시 이래 역대 최저치다. 반면 염가형인 프라임 등급의 판매만 늘어 결과적으로는 수익성만 악화됐다.

최근에는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에도 기존 대비 최대 150만원 저렴한 ‘트위지 라이프’ 트림이 추가됐다. 실속 있는 소비자를 위한 상품이라는 설명이다. SM6가 처음 출시될 때만 해도 쏘나타, 말리부 등 경쟁 모델보다 비싼 가격에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했지만 염가형 모델이 추가되면서 소비자들은 브랜드 가치 하락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다. 결국 비싼 값을 지불한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지금의 위기, 모두의 책임

전문가들은 르노삼성에 닥친 위기가 노사 중 일방이 아닌 양측 모두의 책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측의 잘못된 전략 수립과 노측의 안일한 경영환경 인식으로 기업 전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 수입 모델인 QM3의 성공 이후 틈새시장 공략을 위해 들여온 클리오, 마스터 등의 모델이 시장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한편 시장의 트렌드가 SUV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존 세단 제품들의 경쟁력도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무리한 염가형 추가, 경쟁력 있는 신차 배정 실패 등 여러 요소들이 얽혀 결과적으로 브랜드 경쟁력이 악화됐다. 노조 역시 무리한 요구를 접어두고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 전문가는 “부산공장의 고비용 저생산 구조에도 불구하고 노측은 현대기아차의 2배가 넘는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경쟁력 있는 신차를 배정받아 경영이 안정되면 근로자의 처우도 개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