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역사의 시작 #24. 전후 일본의 국민차 '스바루 360'

  • 입력 2019.02.04 08:20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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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 덕분에 경제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군수품 생산에 주력했던 일본의 기계공업을 민간 시장을 위한 제품 생산으로 전환하고, 국민들이 전후 부흥과 경제성장을 실감할 수 있도록 자동차 보급을 확대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그것이 1955년에 발표된 이른바 '국민차 구상'이었다.

1954년에 개정된 일본 도로교통관리법에 따른 경차 규격(차체 길이 3m, 너비 1.3m, 높이 2.0m 이내, 엔진 배기량 360cc 이하)과 더불어 일본 통상산업성(현재의 경제산업성)은 '어린이 2명 포함 최소 4인승, 최고속도 시속 100km, 엔진 배기량 350~500cc, 시속 60km 정속주행 연비 30km/ℓ, 월 3000대 이상 생산, 값 25만 엔 이하'를 국민차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당시 통상산업성은 일본 경제를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강력한 입지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자동차 업체들에게 큰 압박이었다. 그러나 현실적 한계를 내세워, 기준에 맞는 차를 개발하려 나서는 업체는 드물었다. 그런 가운데 스쿠터 래빗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후지(富士)중공업이 대중차 개발을 시작했다.

후지중공업은 전범기업으로 전후 연합군에 의해 해체되었던 나카지마(中島) 비행기 계열 회사들이 합쳐 만들어진 회사다. 후지중공업은 1950년대 초반에 스바루 1000(P-1)으로 본격적인 승용차 개발을 시도했지만 시설 투자에 필요한 자금확보에 실패하면서 양산을 포기한 바 있었다.

설계는 스바루 1000에 이어 항공기 엔지니어 출신의 모모세 신로쿠(百瀬晋六)가 이끌었다. 개발 목표는 어른 네 명이 탈 수 있는 실내 공간에 공차중량 350kg, 15마력급 엔진으로 최고속도 시속 80km를 내며 값은 35만 엔에 맞추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내 도로의 90% 이상이 비포장인 점을 고려해 노선버스가 갈 수 있는 수준의 언덕은 충분히 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도 세웠다.

엔진은 래빗 스쿠터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한 강제공랭식 2행정 직렬 2기통 356cc로, 16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구동계는 실내공간을 넓히기 위해 앞 엔진 앞바퀴굴림(FF)과 뒤 엔진 뒷바퀴굴림(RR)이 고려되었지만, 조향과 구동을 모두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등속 조인트 공급이 어려워 RR 방식을 택했다.

엔진 성능의 한계를 고려해 차체는 최대한 경량화해야 했다. 이를 위해 별도의 프레임이 필요 없는 모노코크 구조를 택했다. 후지중공업은 스바루 1000에서 모노코크 구조를 쓴 바 있지만 양산차에 쓴 것은 일본 자동차 전체를 통틀어 스바루 360이 처음이었다. 경량화를 위해 일반 승용차보다 얇은 0.6mm 두께의 강판으로 차체를 만드는 한편 차체 강도를 높이기 위해 플로어팬에는 1.2mm 강판을 썼다.

아울러 디자인을 맡은 사사키 다쓰조(佐々木達三)는 보강재를 더하지 않고도 얇은 강판으로도 형태가 유지되도록 차체를 최대한 둥근 형태로 만들었다. 지붕에는 FRP(섬유강화플라스틱), 창에는 유리 대신 아크릴을 쓴 것도 경량화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와 더불어 볼트와 너트 단위까지 철저하게 경량화한 결과, 애초 목표치는 넘어섰지만 무게를 380kg 정도로 억제할 수 있었다.

서스펜션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고 가볍게 만들기 위해 토션 바를 스프링으로 쓰는 네 바퀴 독립식을 택했다. 개발자들은 시험 중 비포장 도로에서 여러 차례 부러지는 등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서스펜션을 완성했다. 덕분에 스바루 360은 일본 최초의 네 바퀴 독립 서스펜션을 쓴 차가 되었다. 스티어링도 당시 일본차에 드물었던 랙 앤 피니언 방식이었고, 소형차로서는 이례적으로 12볼트 전기계통을 쓰는 등 여러 면에서 기술적으로 앞선 모습을 부여주었다.

아울러 설계상 최적이었던 10인치 규격의 타이어가 없어, 타이어 업체인 브리지스톤에 전용 타이어 개발을 주문해 달기도 했다. 다른 제품과 공용하는 부품이 거의 없을 만큼 대중차로서는 상당한 공을 들인 끝에 완성된 스바루 360은 1958년 3월부터 판매가 시작되었다. 이 차는 일본 교통부의 인증 시험에서 네 명이 탄 상태로 시속 83km의 최고속도를 냈고, 연비는 26km/리터를 기록했다.

값은 원래 목표했던 35만 엔보다는 비싼 42만 5000엔이었지만, 당시 대표적 일본 승용차였던 토요타 크라운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일반 소비자가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에 쓸만한 경차로서 스바루 360은 큰 인기를 끌어, 1970년까지 약 39만 대가 판매되었다. 스바루 360과 더불어 후지중공업은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고, 일본에는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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