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역사의 시작 #21. 지프와 로버의 조합 '랜드 로버'

  • 입력 2019.01.30 07:43
  • 수정 2019.01.30 10:26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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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고급차를 주로 만들었던 영국 로버는 전쟁이 끝나자 위기를 맞았다. 전쟁 중 군수품 생산으로 전환해 공장과 노동자는 충분했지만, 막상 전후 대중차와 상용차 수요에는 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영국이 겪고 있던 철강 공급난으로 일반적인 차는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로버는 새차를 내놓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철강 공급 정상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공백기를 메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위기는 로버의 경영을 맡고 있던 스펜서 윌크스(Spencer Wilks)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그 불을 끌 실마리는 동생 모리스 윌크스(Maurice Wilks)에게서 나왔다. 모리스 윌크스는 형인 스펜서와 같은 회사에서 기술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농장에서 쓸 목적으로 전쟁 중 군에서 쓰던 윌리스 지프를 불하받아 갖고 있었고  지프와 비슷한 차를 만들면 영국 농지에서 필요로 하는 트랙터와 트럭의 수요를 흡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군에서 불하한 지프는 많았지만 부품 공급 문제로 관리가 어려웠던 만큼, 기존 로버 차의 부품을 활용하면 유지보수 면에서도 매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경영진의 승인으로 지프를 대체할 차의 개발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1947년 초에 시작한 프로젝트의 첫 시제차는 그해 여름에 나왔다. 시제차의 섀시는 윌리스 지프의 사다리꼴 프레임을 썼지만, 엔진과 변속기, 뒤 차축은 나중에 내놓을 승용차 P3용으로 개발해 놓은 것을 그대로 썼다.

직렬 4기통 1595cc 가솔린 엔진은 흡기 밸브가 실린더 헤드 위에, 배기 밸브가 실린더 블록 옆에 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농업용 다목적 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처음 설계할 때부터 동력인출장치(PTO)를 단 것도 특이했다. 로버가 구동계에서 완전히 새로 개발한 것은 이 PTO와 네바퀴 굴림 장치용 트랜스퍼 케이스와 앞 차축 뿐이었다.

시제차는 윌리스 지프 섀시를 그대로 쓴 탓에 실내 길이가 짧았고, 운전석과 스티어링 휠은 1열 가운데에 놓였다. 나중에 양산을 시작하면서 운전석은 다른 영국 차들처럼 오른쪽으로 옮겨지게 된다. 시제차로 이루어진 시험 결과를 반영해, 양산차는 다른 부분들도 많이 바뀌었다. 차체 앞쪽에 있던 PTO는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실용성을 고려해 프레임과 서스펜션도 새롭게 설계했다. 양산차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1947년 말에는 윌리스 지프보다 더 크고 긴 차가 되었다.

전후 영국이 겪고 있던 심각한 물자난은 시제차 개발은 물론 양산차 생산에도 영향을 주었다. 차체 패널은 모두 항공기용으로 개발된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었는데, 영국 정부의 철강재 공급 제한조치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다. 철은 부족하면서 경량 알루미늄 합금은 남아도는 것이 당시 영국의 현실이었다. 차체색은 전후 잉여물자로 나온 영국 군용기 조종석용 페인트를 활용했기 때문에 밝은 녹색 한 가지 뿐이었다.

아울러 대부분 평면이나 단순한 곡선으로 차체를 만든 것도 정밀 가공설비 없이 간단한 판금 작업만으로 가공해 생산비용과 시간을 줄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생산도 기존 로버 공장의 시설과 부품을 최대한 활용해 이루어졌다. 완성된 양산차는 랜드 로버라는 이름으로 1948년 4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암스테르담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나중에 시리즈 원(1)으로 불리는 이 차는 상자형 단면의 사다리꼴 프레임에 알루미늄 보디를 얹었고, 뒷좌석 없이 앞좌석과 짐칸만 있는 픽업 트럭이 기본 모델로 나왔다. 차체는 지프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단순한 모습이었고, 안쪽으로 푹 들어간 라디에이터와 헤드램프 앞 부분 전체를 격자형 그릴로 덮어 차의 앞부분에 독특한 인상을 만들었다. 휠베이스는 80인치(2.03m) 한 가지였고, 시제차에 쓰인 1595cc(51마력) 가솔린 엔진을 그대로 썼다.

변속기는 4단 수동에 2단 트랜스퍼 케이스를 이용한 상시 사륜구동(4WD) 장치를 갖췄다.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구조와 탁월한 험로 주행 능력은 랜드 로버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로버는 원래 승용차 생산이 본격화될 때까지 한시적으로만 이 차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요가 당초 생산목표를 크게 넘어서자, 정식 모델로 계속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1951년까지 랜드 로버는 다른 로버 승용차의 두 배 이상 팔리는 간판 모델로 자리를 잡았고, 1958년에 주요 설계를 크게 개선한 시리즈 투(2)가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개선되며 21만 대 이상 생산되었다. 그 중 70% 정도는 외국으로 수출되어 랜드 로버를 세계에 알리는 한편 영국 경제 회복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처럼 랜드 로버는 지프의 영향을 받아 시작했으면서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새로운 특징을 갖추면서 실용적 사륜구동 다목적 차로 독자적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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