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역사의 시작 #20. V12 슈퍼카의 전설 '페라리 125 S'

  • 입력 2019.01.29 09:05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는 1920년대부터 이탈리아 알파 로메오(Alfa Romeo)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자동차 경주 팀을 이끌며 명성을 쌓았다. 그러던 1939년에 알파 로메오와 결별하고 자신이 직접 경주차를 만들어 출전하기 위해 회사를 차린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계획은 미뤄졌고, 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다시 자동차 개발에 나선 그는 1947년에 마라넬로(Maranello)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회사 이름을 자신의 성을 따 페라리로 바꿨다.

페라리의 첫 차는 알파 로메오와의 결별 직후 설립한 아우토아비오 코스트루치오니(Auto-Avio Costruzioni)에서 만들었던 AAC 815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마라넬로로 이전하기 전에 완성했던 AAC 815는 피아트제 직렬 8기통 1496cc 엔진을 얹은 경주차였다. 그러나 페라리는 자신의 이름이 붙을 첫 차에 큰 의미를 두고 백지 상태부터 다시 시작했다.

우선 엔진 기술자로 이름난 조아키노 콜롬보(Gioacchino Colombo)를 영입해 새 차의 엔진 개발을 맡겼다. 전쟁 전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한 아우토 우니온과 콜롬보가 설계한 엔진을 쓴 알파 로메오 경주차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페라리는 자신의 차에도 그 차들처럼 V12 엔진을 올리기로 결심한다. 아울러 당시 구체화되고 있던 포뮬러 원(F1) 경주를 염두에 두고, F1 규정에 맞춘 엔진을 만드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두 개의 실린더 블록을 60도 각도로 연결한 V12 1497cc 엔진이 완성되었다. 실린더는 보어 55mm, 스트로크 52.5mm로 아주 작았고, SOHC 2밸브 구성에 세 개의 웨버 카뷰레터로 연료를 공급했다. 최고출력은 6800rpm에서 118마력을 냈다. 이후 개선과 확대를 거듭하며 명차로 꼽히는 250 시리즈 등 여러 페라리에 두루 쓰인 이른바 콜롬보 엔진의 시작이된다.

차체 구조는 철제 파이프를 용접해 만들었고, 서스펜션은 앞쪽이 판 스프링을 가로로 배치한 더블 위시본, 뒤쪽이 라이브 액슬 구조였다. 변속기는 당대 많은 경주차에 쓰인 4단 수동 대신, 페라리의 제안으로 엔진의 고회전 특성을 고려해 특별히 만든 5단 수동을 썼다. 브레이크는 앞뒤 모두 유압식 드럼을 썼다.

첫 시험주행은 1947년 3월 12일에 있었다. 엔초 페라리는 차체를 씌우지 않은 롤링 섀시(rolling chassis) 상태인 차를 직접 몰고 마라넬로 거리를 달렸다. V12 엔진의 실린더당 배기량이 125cc였기 때문에 차 이름은 125 S(Sport)로 정해졌다. 이 이름짓기 방식은 그 뒤로 나온 페라리 V12 엔진 모델들에도 꾸준히 이어진다.

125 S는 두 대가 만들어졌는데, 차체 형태가 크게 다르다. 처음 만들어진 섀시 번호 01C의 차체는 모데나의 코치빌더인 주세페 페이레티(Guiseppe Peiretti)가 만들었다. 차체 앞에는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커다랗게 자리를 잡았고, 차체가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보트테일 형태면서도 뒤 펜더가 차체와 매끈하게 이어져 뒷바퀴를 품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뒷바퀴 위쪽에는 차체와 같은 평면을 이루는 덮개를 달았다. 독특한 차체 뒷모습 때문에 이 차에는 알라 스페사(Ala spessa, 두터운 펜더)라는 별명이 붙었다. 실내는 경주차로 만들어진 만큼, 요즘 페라리의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시보드는 단순한 패널에 대형 엔진 회전계, 다섯 개의 계기, 몇 개의 스위치가 있었다. 좌석은 헤드레스트나 안전벨트는 없었지만 몸을 감싸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앞 유리는 운전석과 동반석에 한 쌍이 달렸다. 또한, 도어가 동반석쪽(왼쪽)에만 있고, 운전석 쪽(오른쪽)은 운전자가 뛰어올라 탈 수 있도록 위쪽을 약간 파놓기만 했다. 두 번째로 만들어진 섀시 번호 02C는 2인승 시가형 차체에 바퀴가 노출되어 있었고, 섀시 번호 01C와 같은 V12 엔진의 출력을 120마력으로 높여 올렸다. 이 차는 나중에 페라리 첫 F1 경주차인 125 F1로 개조된다.

125 S는 1947년 5월 11일에 있었던 데뷔 경주에서는 완주하지 못했지만, 2주 뒤에 열린 로마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그 해 13차례 경주에 출전해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페라리의 이름을 알렸다. 페라리의 첫 차가 경주차였다는 사실은 모터스포츠를 중시하는 페라리의 중요한 자산일 뿐 아니라 누구나 페라리를 정상의 스포츠카 브랜드로 인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