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의 '허와 실'

  • 입력 2019.01.28 10:27
  • 수정 2019.01.28 10:54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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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경유차의 조기 폐차에 쓰인 예산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약 42000 억 원가량이다. 30만대 이상의 노후 경유차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폐차를 하고 새 차로 교체됐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2018년 한 해 동안 전국적으로 저감장치 부착 1만 6845대, 엔진개조 220대, 조기 폐차 11만 411대 등 노후차량 총 13만 368대에 대한 저감조치를 끝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세먼지(PM2.5) 총 2085t, 경유차에서 배출되는 연간 미세먼지 3만 3698t(2015년 기준)의 6.2%를 감축했다고 자평했다. 2018년 수도권에서 조기 폐차 지원을 받은 노후 경유차는 8만2000대에 이른다.  변변한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사용되지 않았거나 환경규제가 엄격하지 않은 때의 기준에 맞춰 제작된 노후 경유차의 상당수가 사라졌다.

수치로 봤을 때, 정부의 저감 조치는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맑아졌다고, 자동차 특히 경유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출가스가 줄었다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다. 전국적으로 미세먼지 농도는 더 짙어졌고 나쁨 수준이라는 기상예보가 더 잦아졌고 듣기에도 섬뜩한 고동도 미세먼지, 긴급재난 경보로 불안해하는 날도 더 많아졌다.

정부는 올해에도 미세먼지 저감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소상공인이나 저소득층의 1t 경유 트럭 조기 폐차 보조금을 늘리고 중·대형 화물차는 최대 3000만 원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배출가스 저감 사업 가운데 특히 조기 폐차 정책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경유차를 폐차하고 경유차를 재구매하는데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경유차를 아예 만들거나 팔지도 못하게 해 영구적으로 퇴출하겠다고 나서는 마당에 우리는 헌 경유차를 팔면 새 경유차를 사도록 돕겠단다. 저감장치 부착과 함께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무려 1조5000억 원이나 된다.

1t 화물차가 대부분인 용달사업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조기 폐차 보조금을 받아 여기에 돈을 조금 보태 다른 중고차를 샀다"고. 이렇게 조기 폐차 후 노후 경유차로 재구매하는 사례는 매우 빈번하다.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도 없다. 운행규제가 심해지면서 대부분 영세사업자인 1t 화물차 소유주는 새 차를 사기보다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중고차로 대체하는 일이 더 많다.

조기 폐차 예산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소비층에 편향돼 쓰이는 것도 문제다. 2018년 수도권 조기 폐차 경유차 8만2000여 대 가운데 RV와 다목적 차량 비중이 73.2%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대형승합과 대형화물차는 각각 0.1%에 불과했다.

예산의 73.2%가 싼타페, 카니발과 같이 레저용으로 보유한 노후 경유차를 처분하고 다시 새 경유차로 구매하는 데 쓰인 셈이다. 정부가 뒤늦게 소상공인 저소득층 보조금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신차 구매 여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관심이 가지 않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경유차는 사라지기는 커녕 되려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경유차는 992만9537대로 전년보다 35만3142대 늘었다. 증가율로 보면 역대 최대치다.

여기에는 어떤 용도나 형태를 가리지 않고 보조금을 주는 현재의 조기 폐차 제도가 몫을 했다. 2030년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경유차를 퇴출하겠다고 공언한 곳이 환경부다. 그렇지만 환경부는 막대한 규모의 예산으로 새로운 경유차 구매를 지원하고 있으니 기가 막이는 일이다.

수도권에서 운행되고 있는 2015년 이전 생산 경유차는 약 460만대다. 따라서 현재의 수준으로 앞으로 10년간 조기 폐차 사업을 지속해도 100만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 경유차가 미세먼지 그리고 NOx를 계속 뿜고 다녀도 현재로서는 대책이 전혀 없다. 그 사이 조기 폐차 보조금을 받은 경유차는 새 차로 교체됐을 뿐이다.

환경 관련 단체 관계자는 "헌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는 것으로 주택 과밀 문제를 해소할 수 없는 것처럼, 노후 경유차를 없애고 새 경유차로 교체하는 것으로는 미세먼지의 가장 큰 발생원인 경유차 문제는 해결이 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지금이라도 조기 폐차 정책의 전면 수정이 시급하다. 조기 폐차 보조금 지급이 경제적 여유층의 경유차 재구매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별적이고 차등적인 지원, 그리고 오염물질 배출 저감 효과가 큰 저감장치 부착 사업에도 치중하면서 단계적으로 경유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지금 추세로 보면 정부가 경유차 퇴출을 약속한 2030년에는 2019년 등록된 노후 경유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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