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역사의 시작 #18. 고 데블(Go-Devil) '윌리스 MB 지프'

  • 입력 2019.01.25 08:23
  • 수정 2019.01.28 08:24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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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은 1930년대 초반부터 포드 모델 T와 모터사이클을 대신해 군 전용으로 쓸 정찰용 소형차 개발을 추진했다. 여러 이유로 지지부진했던 개발은 1939년에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1940년 6월에 135개 자동차 회사에 설계 조건을 배포하고 입찰 참여를 요구했다.

설계 조건은 2단 트랜드퍼 유닛을 갖춘 네바퀴 굴림 장치와 11.8kg・m 이상의 최대 토크로 시속 5~80km로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엔진, 접이식 앞 유리를 갖추고 휠베이스 1905mm, 트랙 1194mm 이하의 차체에 적재중량은 기관총 한 정과 세 명의 탑승자를 포함해 300kg 이상, 총중량은 590kg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척 까다로운 조건이기도 했지만,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었다. 업체들은 11일 내에 입찰에 참여하고 주행 가능한 시제차를 49일 내에 완성하는 것은 물론 75일 이내에 70대의 시험용 차를 납품해야 했다. 입찰에 참여한 것은 윌리스 오버랜드(Willys Overland, 이하 윌리스)와 아메리칸 밴텀(American Bantam, 이하 밴텀) 뿐이었고, 그 중 밴텀만 제 시간에 시험용 차를 완성했다.

그러나 밴텀은 낙찰을 받아도 대량 생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미국 육군은 입찰조건을 변경하고 윌리스와 함께 생산 여력이 충분했던 포드에게 밴텀의 설계를 전달해 개발을 독려했다. 1940년 말에 세 회사로부터 시제차를 받아 1941년 초까지 혹독한 시험을 한 미국 육군은 윌리스의 차를 정찰용 소형차 기본 모델로 정했다. 가장 큰 선정 이유는 '고 데블(Go-Devil)' 엔진의 강력한 힘과 내구성이었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주요 부품의 호환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윌리스의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다른 업체가 병행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포드가 참여함으로써 표준화된 정찰용 소형차의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산되기 시작한 차가 윌리스 MB와 포드 GPW였다.

실제 생산된 두 차는 윌리스, 포드는 물론 밴텀의 설계에서 장점을 고루 취해 조합했다. 아울러 생산 과정에서 생산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고정된 양산 규격으로 만들어진 차는 길이 3359mm, 너비 1575mm, 휠베이스 2032mm의 차체에 총중량은 1111kg이었다.

또한, 접근각 45도, 이탈각 45도, 도하수심 635mm의 험로 주파 능력을 갖췄고 운송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분해 조립이 쉽게 만들었다. 덕분에 규격화된 팔레트에 올려 수송기와 수송선으로 쉽게 나를 수 있는 것은 물론 공중에서 낙하산으로 투하할 수도 있었다.

두 차는 모두 고 데블 직렬 4기통 2200cc 60마력 가솔린 엔진을 얹었다. 이 엔진은 개발 과정에서 최고출력으로 100시간 동안 작동해도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내구성 시험을 거쳤고, 우수성이 입증되어 이후에도 꾸준히 개선되며 1965년까지 여러 모델에 쓰였다. 변속기는 3단 수동이었고, 2단 트랜스퍼 케이스를 갖춰 험로 탈출 능력이 뛰어났다.

초기 모델에는 수동식 와이퍼가 앞 유리 양쪽에 달렸고, 차체 뒤쪽에는 스페어 타이어와 '제리 캔'이라고 불린 보조 연료통을 달았다. 초기부터 모델 이름보다 지프(Jeep)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지면서, 윌리는 1943년 지프를 상표로 등록했다. 그리고 전쟁이 막바지로 향하던 1944년부터 MB 설계를 바탕으로 민수용 모델 개발을 시작해, 전쟁이 끝난 뒤인 1946년부터 CJ-2A라는 이름으로 다목적 차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CJ는 민수용 지프(Civilian Jeep)라는 뜻으로, 이 때부터 지프는 다목적 네바퀴 굴림 차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생산된 지프는 윌리스 MB가 약 36만 대, 포드 GPW가 약 28만 대로 모두 64만 대가 넘었다. 이는 미국이 전쟁 중 생산한 비 전투용 차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덕분에 지프는 세계 최초로 10만 대 이상 양산된 네바퀴 굴림 차로 기록되었다.

아울러 전쟁 중 미국의 압도적 경제력과 생산능력을 보여준 차로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군과 함께 세계 각지를 달리며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한다(Go anywhere, do anything)이라는 표어로 대표되는 지프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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