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역사의 시작 #17. 리버스 엔지니어링 '토요다 AA형 세단'

  • 입력 2019.01.24 08:00
  • 수정 2019.01.28 08:24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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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발명가와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 토요타 사키치(豊田佐吉)는 1923년 있었던 간토(關東) 대지진으로 철도가 무용지물이 된 것을 보고 자동차 시대가 머지 않았음을 예상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 들어 미국 업체들이 일본 현지 공장에서 값싸고 품질이 고른 차를 대량 생산하면서 시장을 장악했다. 토요타 사키치의 장남인 토요타 기이치로(豊田喜一郎)는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본 고유 대중차 개발에 나섰다.

토요타 기이치로는 대학 시절 전공한 기계공학 지식과 아버지 회사인 토요타 자동직기에서 일하며 얻은 노하우, 미국 및 유럽 자동차 업체를 둘러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 개발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댄 분야는 엔진으로, 첫 시제 엔진은 1930년에 완성했다. 그러나 기술 부족으로 자동차에 쓰기에는 성능과 품질이 떨어졌고,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1934년이 되어서야 쓸 만한 엔진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엔진은 1933년형 쉐보레에 쓰인 직렬 6기통 엔진을 완전히 분해해 부품 단위로 역설계하는 이른바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을 통해 만들었다. 실린더 헤드를 중심으로 다른 엔진 설계를 참고한 기술이 반영되기도 했다. 처음 만든 엔진은 원형인 쉐보레 엔진보다 출력이 크게 떨어졌지만, 꾸준한 개선을 거쳐 완성된 오버헤드 밸브(OHV) 직렬 6기통 3389cc 엔진은 원형보다 5마력 높은 65마력의 최고출력을 얻을 수 있었다.

변속기는 3단 수동으로, 당시로서는 비교적 신기술인 동기치합기구(싱크로메시)를 2단과 3단에 썼다. 일본 업체가 만든 차에 싱크로메시가 있는 변속기를 쓴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엔진 동력은 변속기와 프로펠러 샤프트를 거쳐 뒷바퀴로 전달되었고, 엔진을 앞 차축 위에 배치해 앞뒤 무게 배분 비율을 50:50에 가깝게 맞췄다.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판 스프링을 일체형 차축에 연결한 리지드 액슬 방식이었다. 최신 기술인 독립 서스펜션도 고려했지만, 열악했던 당시 일본 도로 사정을 고려해 내구성 높은 구조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브레이크는 당시 대중차에 흔했던 기계식 대신 유압식을 썼다.

차체는 당시 미국에서 혁신적 모델로 평가받은 크라이슬러/드소토 에어플로를 참고했다. 에어플로는 라디에이터와 앞바퀴를 차체 안으로 넣어, 차체 앞쪽을 공기저항이 적은 유선형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프레임 위에 차체를 얹는 방식에서 벗어나 성형한 강판을 새장 모양의 철제 틀로 보강한 구조를 썼다. 토요타는 이런 특징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새차에 반영했다. 

물론 기술과 경험 부족으로 많은 부분을 수작업에 의존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렇게 차체 전체를 철재로 만든 것은 일본 업체 가운데 처음이었다. 아울러 도어를 앞뒤가 완전히 대칭이 되도록 설계해 도어 두 개 분의 금형 만으로 네 개를 만들고, 당시 함께 개발하던 트럭용 부품을 공유하는 등 비용절감에도 신경을 썼다.

토요타 자동직기 자동차부에서 만든 세 대의 A1형 시제차는 1935년 5월에 완성되었다. 이 차를 바탕으로 몇 가지 개선을 거쳐 1936년 양산해 판매를 시작한 차가 토요타의 첫 차인 AA형이다. AA형은 5인승 4도어 세단이었고, AB형 페이튼(Phaeton)이라는 이름의 5인승 4도어 컨버터블도 함께 나왔다. 당시 승용차 수요는 대부분 운전사를 두고 타는 고위 관료와 귀족, 부유층 또는 택시 및 대절차로 한정되어, 실내는 뒷좌석 공간을 최대한 넓게 만들었다.

AA형은 일본에서 미국차의 아성을 위협할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1943년까지 7년 동안 팔린 차는 1404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차에 쓰인 기술이 대부분 외국 기술을 흉내냈다는 한계에도, 일본 여건에 맞춰 여러 기술을 조합해 개선하고 독자적 방식으로 생산한 것은 일본 자동차 산업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AA형 출시 이후 자동차 부문은 토요타 자동직기에서 독립해 별도 회사가 되었고, 그 회사가 발전해 지금의 토요타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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