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도 자동차는 필수품, 작은 차 소비 유도해야

  • 입력 2019.01.21 10:51
  • 수정 2019.01.21 11:16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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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8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부군 필립공이 지난 17일, 자신이 몰던 랜드로버로 사고를 냈다. 피해차가 기아차여서 더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필립공은 이틀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이번에는 안전띠를 매지 않아 경찰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필립공 연령대의 우리나라 90대 이상 운전자는 2017년 기준 6800여명,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98만6676명으로,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의 9%에 달한다. 연령대별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교통사고 2만 6713건 중 65~69세가 1만 3095건으로 가장 많았고 70~79세 1만 1734건, 80~89세 1753건, 90세 이상은 131건으로 집계됐다.

노인 인구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가 됐고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기간도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 노인 인구 비중이 38.1%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6~0.97명, 자연감소 국면에 진입하게 됐다. 노인 운전자의 급증, 이에 따른 교통사고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2009년 585건에서 2017년 848건으로 늘었고 사망자는 1만7000여 명에서 3만8000여 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다른 연령대의 사고가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고령 운전자의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고 올해 1월부터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75세 이상의 면허 적성검사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면허를 취득할 때와 적성검사 기간에 맞춤형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했다. 그러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어르신들의 삶의 질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요소가 이동 편의다. 대중교통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어느 용도이든 어르신들에게도 자동차는 젊은 사람과 같은 의미의 '필수품'이라고 봐야 한다.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 그리고 선진국과 다르게 국내 자동차 소비 행태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팔린 자동차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차급이 경차다. 경차 판매는 전년보다 8.4%가 줄어 13만대 이하로 떨어졌다.

소형 SUV 모델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형 차 판매가 늘어나는 통계 착시가 나왔지만, 세단과 해치백은 몰락하다시피 했다. 반면, 차급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배기량 2000cc를 초과하는 대형차 판매는 무려 48%나 급증했다. 대수로는 90만대가 넘는다. 지난해 팔린 전체 신차의 60% 이상이 대형차였다.  이 가운데 SUV 비중이 60%다. 차체의 크기, 차종의 특성상 노인 운전자에게 버거운 것들이다.

작년 527만대의 신차가 팔린 일본에서 배기량 660cc 이하의 경차는 192만 여대를 차지했다. 경차를 포함한 소형차 전체 판매량은 334만대에 이른다. 베스트셀링카 톱 10 가운데 7개가 경차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해 면허관리를 강화해왔다.

일본의 75세 이상 초고령 운전자는 2016년 기준 약 513만 명,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배가량 되지만 교통사고 그리고 이에 따른 사망자 수는 2009년 422명에서 2017년 418명으로 줄었다. 2017년 고령 운전자에 의한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는 848명이다.

일본의 고령 운전자 사고 감소는 교통안전 시스템과 의식이 우리와 다른 탓이 크겠지만 필립공처럼 운전에 대한 욕구, 그리고 어떤 용도이든 소유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을 때 운전이 쉽고 다루기 좋은 경차와 소형차 소비가 많은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 다른 것이 있다면 일본은 고령 운전자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차종이 엄청나다는 것이고 우리는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얼마나 쉽게 다룰 수 있는지에 따라 교통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령 운전자의 면허관리를 강화하는 것 못지않게 이들에게 최적화된 작은 차,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무조건 막기보다는 65세라는 젊은 나이의 고령 운전자가 경차나 소형차를 구매할 때 일반적인 것과 다른 차별화된 인센티브를 제공해 가능한 작은 차를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팔리지 않는다며 작은 차를 홀대하고 이윤이 좋은 큰 차에만 매달리는 완성차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 장담하는데, 고령화, 초고령화, 저출산 시대는 작고 실용적인 차 위주의 소비 시대와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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