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일탈에 '서슬은 퍼런데 무딘 칼' 휘두르는 한국

  • 입력 2019.01.18 10:03
  • 수정 2019.01.19 19:06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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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업체에 연일 서슬이 퍼런 단죄가 내려졌다. 배출가스 관련 서류를 조작하거나 허위 인증을 받고 가짜 데이터로 과장 광고를 했다는 혐의로 담당 직원이 법정 구속되고 검찰 고발 또는, 벌금이 부과됐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난해 12월, 배출가스 인증 절차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28억1000만 원이 선고되고 직원이 법정 구속됐다.

BMW도 1월, 배출가스 시험성적서를 조작해 벌금 145억 원이 선고됐고 임직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닛산과 토요타도 허위 사실로 과장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이 부과됐다. 한국은 그간 국산차든 수입차든 가리지 않고 자동차의 일탈 행위에 관대했다. 통상적이지 않은 결함이 반복적으로 발생해도 해외에서 벌을 받아도 국내에서는 조용하게 넘어간 사례도 많았다.

소비자들이 아우성을 치고 집단 소송을 벌이고 심지어 승소해도 정작 그런 물건을 만들어 판 당사자는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당사자 간, 그러니까 물건을 판 사람과 산 사람이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방관했다. 무슨 잘못을 해도 이리저리 빠져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으면서 자동차 업체들은 소비자의 머리 꼭대기에서 군림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가 아닌 관계 기관을 먼저 찾아가 이해를 구하는 행태도 과거 있었다. 국산차가 내수용과 수출용을 차별하고 있다는 오랜 의혹, 수입차도 자국이나 주요 시장 소비자와 국내 소비자를 차별한다는, 실제로 그런 사례들도 있었다.

늘 있는 일이지만 결함 시정(리콜)은 항상 해외보다 국내에서 늦게 시작되고 아예 하지 않는 일도 있다. 국내와 해외 기준이 다르고 따라서 국내법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 회피의 방식이다. 따라서 최근 자동차 업체에 내려지는 일종의 처분이 신속하게 내려지고 있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또 새해부터 시행되는 일명 '자동차 레몬법'이 이런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바지를 할 것으로도 기대한다. 그런데 정부가 휘두르는 칼날이 너무 무디다. 일례로 한국 닛산이 배출가스 기준 미충족 모델을 허위로 표시하고 광고했다는 이유로 부과된 과징금 2억1400만 원은 해당 모델의 전체 매출액 214억1156만 원에서 정확하게 1%에 불과하다.

정확한 이윤을 알 수는 없지만, 수입차의 가격에 거품이 있다는 것을 참작하면 닛산이 이 과징금에 눈이라도 깜박할 리 없다. 칼이 무디다 보니 뻔한 잘못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일도 벌어졌다.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벤츠코리아 사장은 지난 17일,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배출가스 인증 누락으로 인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업계 전반의 문제이고 단순한 실수"라고 말했다.

한차례 지적했지만, 당시의 법원 판결에 따르면 직원의 단순 실수라는 벤츠 코리아의 해명과는 다르게 오랜 시간 조직적으로 관련법을 위반한 것으로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벤츠 코리아는 그들 주장대로 실수라고 해도 넘어갈 일이 아닌데 한국 사회, 해당 모델을 구매한 소비자 누구에게도 잘못을 사과하지 않았다. 

일명 '윤창호법'은 처벌의 강도가 일부 부족하다는 지적에도 음주운전을 줄이는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서슬이 퍼런 강력한 처벌 조항을 예외 없이 적용했을 때에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자동차 업체의 불법 행위에 대해 법원이나 정부 당국의 처벌이 무뎌진 칼날처럼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껌값 정도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최종 책임자의 처벌 없이 애꿎은 담당 직원의 법정 구속만으로는 소비자를 우습게 보는 행태가 근절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그리고 다수의 소비자가 피해를 보거나 중대한 결함을 은폐하거나 축소했을 때 정신이 번쩍들 정도, 그러니까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얼마 전 금괴 밀수범에게 수조 원의 벌금이 내려지는 걸 보면서 든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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