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역사의 시작 #13, 가장 빠른 트럭 벤틀리의 '3리터'

  • 입력 2019.01.18 08:40
  • 수정 2019.01.28 08:25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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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높이 평가받던 엔지니어 중 한 사람이었다. 전쟁 중 군에 복무하며 항공기 엔진 개발에 참여했던 그는 1919년에 제대하면서 오랫동안 자신이 꿈꿨던 차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가 나중에 벤틀리 차에 관해 이야기했던 '빠른 차, 좋은 차, 동급 최고의 차'라는 표현은 그가 생각하던 이상적 차의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벤틀리는 만든 첫 차를 내놓기에 앞서 시험용 차부터 만들었다. 첫 번째 시험용 차인 EXP 1은 시험주행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에 고무된 벤틀리는 두 번째 시험용 차인 EXP 2를 191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올림피아 모터쇼에서 공개했다. 당시 전시된 차는 차체 없이 섀시와 동력계 및 구동계만 갖춘 롤링 섀시(rolling chassis)였다. 

게다가 일부 엔진 부품을 미처 공급받지 못해, 실제로는 미완성 엔진을 올린 상태였다. 그럼에도 EXP 2는 새로운 엔진 기술로 주목을 받았다. 직렬 4기통 2996cc 엔진에는 항공기 엔진 기술을 응용한 경량 알루미늄 합금 피스톤이 쓰였고, 기어로 구동하는 SOHC  밸브 계통은 실린더마다 밸브가 흡기 두 개, 배기 두 개씩 있는 4밸브 구성이었다. 

네 개의 실린더가 들어가는 실린더 블록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든 모노블록 구조도 주목할 만한 것이었는데,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등 항공기에 쓰인 첨단 소재를 폭넓게 써서 가볍고 튼튼한 것이 특징이었다. 엔진 압축비는 4.3:1로 3500rpm에서 70마력의 힘을 냈다.

1920년대 초반 엔진으로는 높은 기술 수준과 성능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변속기는 4단 수동이었고, 시속 129km의 최고속도를 내기에 충분했다. 시험용 차를 바탕으로 생산된 벤틀리의 첫 차는 엔진 배기량인 3리터가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1921년 9월에 완성된 첫 양산 벤틀리 3리터 롤링 섀시의 값은 1919년 올림피아 모터쇼에 공개했을 때 제시했던 750파운드보다 크게 올라 1100파운드가 되었다.

물론 시판되기 전까지는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모든 모델은 런던 북부 크리클우드(Cricklewood) 공장에서 롤링 섀시 형태로 출고되었다. 차체는 주로 설룬(세단)과 투어러(오픈 카)로 만들어졌는데 특히 투어러의 인기가 높았다. 차체 제작은 대부분 당대 유명 코치빌더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많은 고급차들처럼 섀시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길이로 만들어졌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휠베이스가 2984mm(117.5인치)였다. 1923년에는 고급 세단을 위한 긴 섀시, 1924년에는 고성능 모델을 위한 짧은 섀시가 추가되었다. 짧은 섀시에 압축비를 높여 최고출력이 85마력으로 높아진 엔진을 얹은 모델에는 스피드(Speed)라는 이름이 덧붙었다.

변속기는 4단 수동으로, 기어비 간격이 좁은 A타입과 D타입, 폭이 넓은 B타입, 넓고 좁은 구성을 섞은 C타입이 있었다. 초기 모델에는 앞바퀴에 브레이크가 없었지만 나중에 기계식 드럼 브레이크가 네 바퀴에 모두 쓰였고, 별도의 슈가 뒷바퀴를 잠그는 주차 브레이크도 있었다. 

서스펜션은 판 스프링에 하트포드(Hartford)가 만든 조절식 쇼크 업소버가 네 바퀴에 모두 달렸다. 새로운 기술과 성능에 힘입어 3리터는 경쟁차들을 앞섰고,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나오는 넉넉한 토크는 이후 벤틀리의 중요한 주행특성으로 이어졌다.

3리터는 대부분 영국 왕족을 비롯해 부유층에게 인기를 얻었다. 생산은 1929년까지 계속되었는데, 나중에 다른 모델이 추가된 되에도 1927년까지 벤틀리 생산대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3리터의 인기는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으로 더욱 높아졌다. 

시험용 EXP 2부터 1921년에 열린 여러 경주에 출전해 우승을 거뒀고, 1924년과 1927년에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차 덩치가 컸기 때문에 에토레 부가티는 이 차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빠른 트럭'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첨단 기술로 강력한 성능을 내는 고급차로서 벤틀리의 입지를 다지기에는 충분한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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