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역사의 시작 #12 유럽 최초의 완성차 '시트로엥 타입 A'

  • 입력 2019.01.17 08:00
  • 수정 2019.01.28 08:25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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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곳은 수 백 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의 만드는 차들은 대부분 여전히 산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공방에서 만드는 수공예품에 가까왔다. 전쟁 중 군수품 생산에 뛰어들어 대량생산을 경험한 기업가는 많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자동차 생산에 뛰어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많지 않은 사람 중 하나가 앙드레 시트로엥(Andre Citroen)이었다. 시트로엥은 20세기 초에 기어 즉 톱니바퀴 생산으로 부와 명성을 얻었다. 특히 V자형 톱니가 있는 이중 헬리컬 기어는 소음이 적고 효율적이어서 호평을 얻었다. 이 기어는 나중에 그가 세운 자동차 회사 로고의 모티브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앙드레 시트로엥은 파리 케 드 자벨(Quai de Javel)에 탄피를 비롯한 군수품 생산공장을 지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자동차 생산에 뜻을 둔 그는 이 공장을 확장하고 자동차 생산 설비를 들여 놓았다. 그는 이미 1917년 초부터 기술자 줄 살로몬(Jules Salomon)과 함께 자동차 개발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자동차 개발과 생산을 추진했다. 첫 차의 개발 목표는 합리적인 값에 유지비 부담이 적은 대중차였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포드 모델 T의 일관 생산공정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프랑스에서도 자동차를 대중화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시트로엥의 첫 차는 1919년 6월 4일 샹젤리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고, 6월 6일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10 HP 타입 A라는 이름의 차는 당시 대중차로는 꾸밈새가 고급스러웠다. 내장재는 직물 재질이었고, 등받이 안에는 스프링이 있었다. 옆 유리에는 햇빛 가리개가 있었고 실내에도 전기식 조명이 있었다. 앞좌석은 앞뒤로 거리를 조절할 수 있었고 등받이는 눕힐 수 있었다.

동력은 수랭식 직렬 4기통 1327cc 4기통 가솔린 엔진에서 나왔다. 최고출력은 18마력이었고, 최고속도는 시속 65km에 이르렀다. 변속기의 최종감속 기어로는 시트로엥의 상징인 이중 헬리컬 기어가 쓰였다. 섀시는 두 가지 길이로 만들어졌고, 차체 옆에 발 받침이 필요 없을 만큼 낮아 타고 내리기 편리했다. 

스티어링 휠은 차체 왼쪽에 달려 있었는데, 지금과 달리 당시 자동차에서는 흔치 않은 배치였다. 제동은 발로 작동하는 페달로 변속기 브레이크(변속기 출력축에 달린 드럼에 작용하는 것)를, 핸드 레버로 뒷바퀴를 제동했다. 차체는 3인승 토피도(Torpedo)부터 경 트럭과 밴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생산 첫 해에 기본형 타입 A는 7950프랑에 팔렸다. 당시로서는 가장 저렴한 차였지만 꾸밈새는 두 배 이상 비싼 차와 비슷했다. 출시는 성공적이었지만 초기에는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1919년에는 2810대를 판매하는데 그쳐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했다. 게다가 대량 생산으로 수익과 효율을 높이려면 제품을 단순화하는 것이 바람직했지만, 타입 A는 그와는 반대였다. 

결국 1920년에는 섀시 길이를 단일화하고 값을 1만 2500프랑으로 올렸는데, 그럼에도 타입 A는 여전히 시장에서 가장 저렴했다. 1920년에는 판매가 크게 늘었고, 생산 속도도 하루 100대를 넘겨 한 해 동안 2만 대 이상 생산되었다. 1921년에는 모델 종류를 한층 더 단순화해, 기본형 스탠다드와 고급형 룩스, 스포티한 토피도 스포트 스페셜의 세 가지로 정리가 되었다. 타입 A 스페셜은 엔진 배기량을 키워 일반 모델보다 성능이 더 뛰어났다.

타입 A는 유럽 최초의 '완성차'이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차를 구매한 뒤 코치빌더에게 차를 맡겨 따로 차를 꾸미지 않아도 됐고 이런 장점으로 1919년 6월부터 1921년 12월까지 2년 반 동안 2만4093대가 생산되었다. 유럽에서 처음부터 현대화된 생산 시설을 갖추고 대량 생산을 통해 대중차를 보급한 회사는 시트로엥이 처음이었고, 그 덕분에 타입 A는 유럽 최초의 양산 대중차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합리적 값에 살 수 있는 믿음직한 차의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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