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어부인척, 르노 마스터를 타고 붕어의 성지로

  • 입력 2018.11.26 10:00
  • 수정 2018.11.26 10:57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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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에 있는 예당저수지는 일본강점기인 1929년 착공됐지만, 완공은 해방과 6.25 전란 등 우여곡절로 1963년에야 이뤄졌다. 지천이 많고 3만7400㎢에 달하는 관개 면적으로 충남 중부 지역에 넉넉한 용수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다양하고 풍부한 어종으로 낚시인 사이에서는 '붕어의 성지', '초보 낚시 사관학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르노 마스터를 몰고 예당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이랬다.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 수도꼭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났던 완전 초보 조졸(釣卒)은 오래전 일이고 잡은 고기를 기꺼이 방생하고 허탕을 쳐도 웃을 줄 아는 자작(慈作. 9등급)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꾼의 입장에서 이 차가 몹시 탐이 나서다.

(구조오작위는 작가 이외수의 1985년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에서 낚시꾼들의 수준을 14등급으로 나눈 명문으로 초보인 조졸을 시작으로 어느 경지에 오르면 후작(厚作), 공작(空作), 조선(釣仙)으로 부르고 마지막 자연에 묻히는 성인의 경지를 조성(釣聖)으로 부른다).

낚시하는 또 가야만 하는 이유는 구만 가지가 넘는다. 이번에는 마스터를 몰아야 했고 화물차를 그냥 탈 수 없었고 그래서 3명의 꾼을 꼬드겨 예당으로 향했다. 화물칸에는 낚시 도구가 가득 실렸고 번갈아 수동변속기를 다루면서 월척을 꿈꾸며...

큰 덩치, 쉬워도 너무 쉬웠던 운전

마스터는 화물차다. 차의 길이가 5m(S 5050, L 5550mm)를 넘고 무게도 2t(S 2000. L 2075kg)이나 된다. 1t 화물차 현대차 포터 기아차 봉고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공차중량은 200kg 이상 무겁다.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수동변속기(6단), 오래전 손에서 떠난 가물가물한 감으로 운전을 해야 했다.

그런데 기우였다. 운전석에 앉는 순간부터 넓은 시야가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좌우 문짝의 창문이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시트보다 아래까지 개방돼 있어 전측면의 사각 지역을 최소화했다. 아웃사이드 미러 하단에는 와이드 뷰 미러(조수석 쪽은 사각지대 미러) 반사경을 달아 측면 시야를 꽤 넓게 확보해 놨다.

가장 두려워했던 후진도 수월했다. 아웃사이드 미러 하단 와이드 뷰 미러가 후륜 부근을 보여주고 후방 카메라까지 제공되는 덕분이다. 5m가 넘는 전장에도 전폭은 2020mm로 넓지가 않아 일반 주차장의 주차면에 차량을 세우고 빼내는 일 역시 어렵지 않다. 차에 오르거나 적재함에 짐을 싣는 것 역시 수월하다.

지면에서 적재함까지의 높이가 545mm에 불과해 성인이면 무릎 높이에서 승하차할 수 있고 화물 역시 그만한 높이만 들어 올리면 된다. 스티어링 휠을 비롯해 센터패시아와 클러스터의 단순한 구조는 운전 집중력을 높여준다. 센터페시아에는 공조 버튼과 오디오를 조작하는 몇 개의 버튼이 전부다.

상용 밴답게 단순하지만, 수납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많다. 오버헤드 콘솔을 비롯해 승객석에만 무려 15개나 된다. 운전석 너머, 글로브 박스의 상단, 센터패시아 하단에 겹겹으로 마련돼 있다. 봐야 할 서류가 많은, 단말기 등의 소품을 항상 휴대해야 하는 택배 등 상용차 용도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3인승이지만 가운데 벤치 시트는 접혀 놓으면 컵홀더와 소품을 수납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2열에 앉은 동승자는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고 했지만 직접 앉아보면 편하지가 않다. 동승자석도 마찬가지다. 시트의 기능이 제한적이어서 장거리 운전은 휴식이 자주 필요하겠고 시트 위치가 높은 반면, 내비게이션 위치가 낮아 보는데 불편한 것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안전 그리고 기본기가 탄탄한 주행 안정성

흔한 1t 화물차는 노면이 좋지 않은 곳에서 적재함이 좌우 상하로 통통 튄다. 대부분이 1열에는 승용차와 같은 멕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적용하지만, 후륜에는 겹판(리프) 스프링을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후륜에서 충격을 과장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마스터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충격의 강도는 다르다. 간단한 요철은 티 나지 않게 극복을 하고 다른 차량을 추월할 때 차체의 균형이 제법 바르게 유지된다. 캡오버 타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르노는 마스터에 익스텐디드 그립 컨트롤, 트레일러 흔들림 조절 기능을 추가했다.

도로여건에 따라 능동적으로 구동력을 제어하고 엔진 토크와 브레이크를 조절해 흔들림을 최소화한 것. 따라서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덩치 큰 SUV를 모는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속도가 붙으면 엔진의 울림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차체의 거동이 매끄럽게 연결된다.

2.3ℓ 디젤 엔진은 6단 수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145마력, 최대토크 36.7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국내 소형 화물차보다 높은 성능이지만 연비는 S 모델이 10.5, L 모델은 10.8km/ℓ로 더 높다. 에코 모드가 있고 정지했을 때 기어를 중립에 위치시키면 시동이 꺼지고 다시 켜지는 ISG가 있어 연료를 더 절약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변속 시점을 놓쳐 시동이 꺼져도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클러치 페달을 밟으면 기어의 위치와 상관없이 시동이 다시 켜진다. 정차 중 꺼진 시동도 클러치를 밟으면 다시 켜진다.

경험이 많지 않은 수동변속기는 매끄럽게 조작이 된다. 변속할 때마다 밟는 클러치의 반응이 부드럽고 클러스터의 태코미터에 적절한 변속 시점을 알려주기 때문에 짧은 시간 익숙해진다. 십 수년 만에 수동변속기를 잡아 본다는 낚시 동승자도 딱 한 번 시동을 꺼트렸을 뿐, 마스터를 능숙하게 다뤘다.

운전 중 아주 예민한 소리로 경고음을 내주는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도 동급 상용밴 가운데 처음 적용이 됐다. 경사로 밀림 장치, 차속감응 오토도어록, EBD-ABS 등의 안전 사양도 제공이 된다. 다른 무엇보다 엔진이 앞쪽에 위치한 세미 보닛이 정면 충돌할 때 충격 에너지를 흡수, 상해 정도를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

풍부한 적재능력 그리고 효율성

1.05m의 개구부를 가진 슬라이딩 도어, 후면 트윈스윙타입 테일게이트를 갖춘 마스터의 적재함은 S 모델이 2505/1705/1750(장/폭/고, mm)의 사이즈를 갖고 있다. L 모델은 3015/1705/1940(장/폭/고, mm).

메탈 벌크헤드와 레진 우드 플로어로 마무리된 적재함은 보기에 썰렁하지만, 바닥에 화물을 고정할 수 있는 후크가 있고 카고 램프와 12V 파워 아웃렛을 제공한다. 적재함의 높이는 1705mm. 캡오버 타입이기 때문에 화물을 안전하게 적재할 수 있고 적재물 낙하로 인한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화물의 부피나 용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 사람의 1박 낚시 도구가 작지 않은 용량인데도 바닥을 다 덮지 못했다. 제대로 설비를 해서 낚시차로 꾸민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내내 든다. 그래서인지 마스터를 구매한 사람 중에는 캠핑카로 꾸미려고 하거나 또 바이크나 낚시 같은 동호회 등이 유독 많다고 한다.

운행상 제한도 많지 않다. 적재 중량이 1.5t 미만이어서 도로교통법상 1차로를 제외한 모든 차로를 달릴 수 있고 택배 차량 등록에도 문제가 없다. 한편 마스터의 가격은 S 모델 2900만 원, L 모델 3100만 원으로 국산 1t 화물차보다 평균 1000만 원 이상 비싸다.

1t 화물차를 구매해 택배 차량을 등록하기 위해 탑을 설치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가격 차이가 줄겠지만 그런 점을 참작해도 고민은 불가피해 보인다. 어떤 장점으로 이런 가격 차이를 극복할지가 르노의 고민이 될 듯한데 이런 상황에서도 마스터는 연내 300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이미 초과했다고 한다. 

<총평>

낚시는 허탕을 쳤다. 세 사람 모두 밤을 새우다시피 했지만, 찌 움직임 한번 보지 못했다. 꽝을 친 꾼들의 변명도 구만 가지가 넘는다. 변명을 하자면 갑작스럽게 내려간 기온, 세찬 바람에 비까지 내린 변덕스러운 날씨가 시즌 마무리 낚시를 빈손으로 돌아서게 했다.

서울에 첫눈이 내린 날, 수도권 인근까지 되돌아가는 길은 강한 비가 내렸지만, 전날 마스터를 처음 다룰 때보다 운전은 더 수월했다. 마스터의 최대 장점은 이렇게 악천후에도 믿고 달릴 수 있는 편안함으로 봐야겠다. 가격은 전적으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비쌀 수도 적당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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