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란서 자동차 #3] 숙소 앞에서 만난 늙은 사자 한 마리

  • 입력 2018.09.14 06:00
  • 수정 2018.09.17 12:24
  • 기자명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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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한 달 살이 첫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사전 예약한 18평형 아파트먼트로 방 2개와 작은 크기의 부엌과 거실이 포함됐다. 욕조와 세면대가 있는 샤워실과 변기가 설치된 화장실이 각각 독립 공간으로 구성된 부분을 제외하면 우리네 소형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구조다.

실내는 인사동 갤러리를 연상시키듯 하얀색 페인트로 벽과 천장을 칠하고 거실의 삼성전자 TV와 부엌의 지멘스 식기세척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제조사의 회색빛 소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테리어 소품들은 화이트톤으로 통일됐다. 하얀색 매트리스 위에서 역시나 순백의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은 뒤 눈을 뜨면 하얀색 천장과 벽이 보이는, 뭐 그런 분위기다. 아마도 인테리어 구조는 프랑스 일반 가정집과 큰 차이가 없겠으나 에어비앤비 전용으로 사용되는 특성상 실내 소품에서 이런 분위기를 연출한 게 아닐까 짐작된다.

무엇보다 건물 6층에 위치한 숙소는 승강기 부재가 첫 방문객에게 화이트월 인테리어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지난밤 자정을 살짝 넘겨 도착한 숙소 정문에서 장시간 비행의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한 달 살이 각오만큼 배부른 대형 캐리어를 이고 올랐던 수많은 계단의 기억들은 절대 잊을 수 없겠다. 지친 몸을 하얀색 침대와 몇 시간 밀착시킨 뒤 맞이한 파리의 첫 아침은 한국의 요즘 날씨 만큼이나 화창하다. 다만 아침 기온이 15도 안팎으로 조금 쌀쌀하고 한 낮에는 약 20도까지 올라 조금 걷다 보면 등줄기에 제법 땀이 흐른다.

숙소 인근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공동묘지가 있어 어디서든 길 잃을 걱정은 덜었다. 가까운 지하철까지 걸어서 약 15~20분, 대부분 일반 가정집들로 구성된 주택단지로 구성된 이유로 낮과 밤 모두 거슬리는 소음 없는 정숙함이 이 곳의 최대 장점이다. 숙소 앞 도로는 좌우측으로 촘촘히 주차된 자동차들 사이로 일방통행 도로가 있는 파리의 여느 주택가와 비슷하다.

웬만한 실력 없이는 엄두도 못 낼 비좁은 주차 공간은 퇴근 시간과 비례해 더욱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도시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 건축물 대부분은 주차 공간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고 주택가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런 이유에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 차량 보다는 경차와 소형차, 해치백 등 작은 차체와 실용성을 강조한 승용차들이 이곳 파리에선 여전히 주류를 차지 중이다.

숙소 앞 도로 좌우측 공간 역시 다양한 브랜드의 차량들이 한 자리씩 늘 차지 중이다. 프랑스 자국 브랜드인 푸조와 시트로엥, 르노가 절반 이상을 넘고 스즈키와 미니 등 수입산 소형차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런 상황에서 숙소 정문에는 자동차 박물관에서 나올 듯한 포스의 회색빛 올드카가 꽤 잘 보존된 모습으로 주차되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해당 차량은 푸조의 305 SR로 1977년에서 첫 생산되어 1988년 단종된 모델임을 고려하면 숙소 앞 차량은 최소 30년 이상의 이력을 간직하고 있음이 짐작된다. 하지만 한 눈에도 내외관 관리가 꽤 잘되고 당장 도로에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포스를 뽐내고 있으니 감탄이 나온다.

1897년 아르망 푸조에 의해 설립된 프랑스 자동차 브랜드 푸조는 한국의 현대차 만큼이나 프랑스에서 주류로 자리한 자동차 기업이다. 포효하는 사자를 형상화한 엠블럼이 특징으로 프랑스의 대표적 국민 브랜드로 통한다. 이런 푸조의 305 세단형의 경우 당시 푸조의 플래그십 504 보다 차체를 줄이고 디젤엔진을 장착하며 보다 합리적 가격을 내세워 출시돼 단종 직전까지 꾸준한 판매고를 자랑했다. 해당 모델의 경우 엔진은 1290cc, 1472cc 가솔린 타입과 1548cc 디젤 등으로 구성되고 당시로써는 드물게 모노코크 차체가 적용된 부분 역시 특징.

외관 디자인은 기존 304에서 헤드램프와 방향지시등 일부에 변화를 주고 형태는 세단 외에도 왜건과 밴 타입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였다. 이 밖에 푸조 305는 공기역학을 고려한 '베라(VERA)'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외관 디자인으로 라이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범퍼, 스포일러 등을 선보였으며 이는 향후 1982년 생산을 시작한 305 시리즈 개량형 모델에도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푸조에서 300 단위의 차명을 사용한 것은 1969년 이후로, 앞서 선보인 204, 404, 504 등 3가지 라인업에서 소형과 중형 사이 304를 새롭게 추가하며 소형차 열풍에 불씨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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