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깃발, 마부와 택시 그리고 증기기관차와 차량 공유

  • 입력 2018.08.08 10:52
  • 수정 2018.08.08 11:04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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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증기기관차는 혁신이자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의 하나였다. 말이 끌고 사람이 모는 마차가 유일한 이동수단이었던 시대, 힘들이지 않고 더 많은 사람과 짐을 싣고 오랜 시간 이동하는 신개념 교통 수단으로 이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자동차산업으로 발전했으니 말이다.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을 했지만 만만찮은 견제세력이 등장했다. 런던 도심의 교통을 좌지우지하던 마부. 이들은 스스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가 사람에게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협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에 강력한 운행 규제를 요구했다.

영국 정부는 증기기관차 증가에 맞춰 1861년 지금의 도로교통법을 만들어 중량을 12t, 시외 최고 속도를 16km/h(도심 8km/h)로 제한했다. 이 규제는 그러나 생존권 사수를 외친 마부의 강력한 요구에 밀려 1865년 대폭 강화된다.

시외와 도심 최고 제한 속도를 각각 6km/h, 3km/h로 낮춰 사람보다 느린 속도 규제와 증기기관차 1대에 무려 3명이 운행에 나서도록 했다. 증기기관차 한 대당 마차 한대가 앞서고 여기에 운전사와 보조기사 그리고 기수까지 갖춰야만 운행이 가능했다. 기수는 증기기관차가 움직일 때마다 바로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위험한 사람의 접근을 막는 등 주변을 통제했다. 

마차의 기수는 1878년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말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새로운 규제가 추가되기도 했다. 마부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해 영국 정부가 증기기관차를 규제하는 사이 칼 벤츠, 폭스바겐, 포드, 르노 등이 내연기관을 발명하고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만들고도 영국 자동차 산업이 독일과 프랑스, 미국 등에 밀려나게 만든 이른바 붉은 깃발법, '적기조례'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을 얘기하면서 언급한 붉은 깃발법이 당장 사라져야 할 분야가 자동차다. 그 동안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던 차량 공유, 대리운전과 렌터카를 결합한 혁신 사업 등이 정부 규제와 기득권에 밀려 좌초되거나 사업을 접게 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중고차와 정비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려 했던 수많은 스타트업도 기존 사업자의 반발과 규제에 막혀있다. 그래서인지 마부와 택시, 공유 차량과 증기기관차가 겹친다. 일제부터 시작된 택시는 지난 80여 년간 철저한 정부 관리와 보호로 지탱해온 대표적인 업종이다.

사업 면허, 운임, 증차와 감차 등 사업 전반을 정부가 통제하고 있고 사업자는 그런 보호 속에 자기 영역을 침범 당하지 않고 지켜왔다. 과거의 콜밴 사태 때도 그랬고 대리운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차량뿐만 아니라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공유 서비스는 전 세계적이고 시대적인 추세다.

대중교통이 촘촘해지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카셰어링이 일반화되면서 택시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 마부 보호를 위해, 택시업종의 기득권에 밀려, 증기기관차를 규제하듯 공유 차량 사업 진출을 막으면 마부가 사라진 것처럼 택시가 사라져도 공유 차량 사업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이 주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부분의 규제는 이해관계자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운수사업을 규제하는 듯한 여객, 화물운송사업법은 사실 외부 침입을 막는 벽과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2300만여 대의 자동차 가운데 150만여 대의 사업용 자동차가 아니면 요즘 뜨거나 아니면 혁신적인 아이디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100년 전 마부를 위한 영국의 붉은 깃발법이 지금 대한민국에 버젓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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