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차 다이하쓰 무브, 뻥 연비도 유쾌한 현지 체험

  • 입력 2018.07.24 11:39
  • 수정 2018.07.24 15:33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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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전체가 폭염으로 달궈진 21일,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의 기온은 하루 종일 21도를 넘지 않았다. 삿포로에서 더 북 쪽, 후라노는 해가 기울자 긴 소매가 필요해질 정도로 서늘해진다. 다음날 삿포로 낮 기온도 20도를 넘지 않았다.

21일 아침 일찍, 일본 경차 브랜드 다이하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무브(MOVE)를 빌렸다. 목적지는 라벤더 축제가 시작된 후라노 팜 토미타, 삿포로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약 150km. 대중교통이 빈틈없게 연결된 일본이지만 시간을 절약하려면 자가용이 유리한 경로다.

주말이면 명절 못지 않게 정체가 심한 우리와 다르게 홋카이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른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일본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시속 80km, 하지만 시속 100km를 넘겨 달리는 차도 제법 많았다. 그러나 어디서 찍는지도 모르게 단속이 될 수 있다는 렌터카 회사 직원의 엄포에 삿포로 도심의 신호등, 고속도로의 제한속도, 일단정지 표지판에 집중했다.

벤츠에 대형 미니밴, 의외로 다양한 삿포로의 자동차

일본의 어느 도로에서든 노랑 번호판을 단 경차는 가장 흔하다. 기아차 레이와 같은 2 BOX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지만 스즈키 허슬러와 미쓰비시 미브, 다이하쓰 코펜과 같은 다양한 차종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관광객이 많고 따라서 렌터카 사용이 많은 삿포로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벤츠와 아우디, BMW와 같은 고급 수입차와 미니밴, 토요타와 닛산의 중형차와 SUV를 다른 어떤 도시보다 자주 만나게 된다. 다이하쓰 무브를 빌린 이유는 이랬다. 일본 경차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혼자 N-BOX의 재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다 N-BOX의 연간 판매량은 20만대 이상으로 일본 모든 차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이다. 지난해 기준 N-BOX는 22만3449대가 팔렸다. 어쩔 수 없이 2위 모델인 다이하쓰 무브를 선택했다. 무브의 지난해 판매량은 14만5000여 대, 토요타 계열 다이하쓰는 경차 전문 브랜드다.

일본 경차의 기준은 660CC 미만의 배기량과 전장 3400mm, 전폭 1480mm, 높이 2000mm 이하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다이하쓰 무브는 658cc의 배기량에 전장 3395mm, 전폭 1475mm, 전고 1630mm, 축거 2455mm의 제원을 갖고 있다.

최고 출력 47마력(파워 부스터 64마력), 최대 토크 9.4kg.m의 성능을 갖췄고 연비는 무려 27.6km/ℓ의 수치를 갖고 있다. 가격은 4WD 기준 123만6600엔(1264만 원)부터 시작한다.

눈이 많은 삿포로에서는 차량 대부분이 사륜구동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제원상 수치로 보면 성능은 아쉽고 연비는 놀랍다. 실제 주행에서는 어떨까? 삿포로의 나카지마 코엔역 인근에서 무브를 빌려 후라노와 비에이,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오오쿠라야마까지 두루 돌아봤다.

성능은 그런대로, 연비는 '뻥, 주눅 들 것 없어 좋고

일본에서 경차는 보편적이다. 차량이나 그 차를 모는 운전자를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따라서 경차를 몰면서도 일본인 특유의 배려에 놀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일본 교차로의 신호는 녹색 신호가 켜져야 직진, 좌회전, 우회전을 할 수 있다. (간혹 대형 교차로에서는 우회전 신호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다).

바깥 차로 대기 중 좌회전 차량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면 오른쪽으로 빠져 직진을 할 수 있도록 후미 차량이 기다려 준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면도로를 빠져나갈 때, 차로를 변경할 때도 직진 차량이 어김없이 정지해 먼저 진입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무브의 출력과 토크의 한계, 여기에 페달의 반응도 시원치가 않아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하지만 이런 배려 덕에 차로를 변경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느긋하게 움직여도 느긋하게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무브는 경차의 투박한 질감을 경량의 고강성 보디인 D 모노코크와 D 서스펜션으로 잡았다.

잦고 많은 겨울철 눈으로 도로의 노면 상태는 도심이나 고속도로를 가리지 않고 상태가 좋지 않지만 바닥 소음이 거슬린 수준으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대신, 엔진 소음이 거칡게 들어오고 빠르게 차로를 변경하거나 굽은 도로에서는 차대 전체가 불안해진다.

운전대에 있는 D 어시스트 버튼은 누르면 제법 공격적으로 변신을 한다. 에코 모드와 함께 설정이 가능한 D 어시스트는 파워 모드로 출발과 가속에 빠르게 반응해 준다. 언덕길에서 뒤로 밀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기능도 있다. 성능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빠르다거나 민첩하다거나 반응이 좋다거나 따위를 얘기할 수 있는 차가 아니어서다.

후라노 팜 토미타 주차장에서 진입로를 잘 못 찾았을 때, 무브의 최고 장점을 경험한다. 무심코 출구 쪽으로 들어가 여러 대의 차량이 뒤엉키게 만드는 주범이 된 순간, 마주 선 폭스바겐 폴로의 젊은 운전자가 좁은 공간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해 줬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으로 봤는데, 청년의 손짓을 따라가자 신기하게 길을 터준다. 무브의 회전 반경은 4.4m, 차선 하나를 조금 넘어가면 가능한 수치다. 그리고는 아주 아주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연비는 뻥에 가깝다. 일본의 연비 측정 모드인 JC08이 후한 탓에 무브 4WD의 표시 연비는 25.6km/ℓ, 다른 트림인 토파즈 네오 2WD는 31.0km/ℓ나 된다.

각종 연비 경쟁에서 비교적 많은 수상을 한 경험, 그리고 경제속도를 제한속도로 잡고 있는 고속도로를 차량 반납할 때 연료 보충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조심스럽게 400km 남짓의 거리를 달렸지만 에어컨도 켜지 않았는데도 20km/ℓ를 겨우 넘겼다. 그래도 실망스러웠지만 유쾌했다.

<총평>

빌린 다이하쓰 무브와 달리 판매용 모델에는 다양한 편의 및 안전 사양이 제공된다. 기본적으로 강성이 뛰어난 골격을 갖고 있고 보행자를 포함한 충돌 경보, 차선이탈 경보, 전후방 오발진 제어, 오토 하이빔으로 구성된 스마트 어시스트 Ⅲ는 수준급 안전사양이다.

공간도 넉넉하다. 센터 콘솔이 없는(암레스트는 접거나 펼 수 있다) 1열, 1열과 2열 시트의 다양한 베리에이션, 2열 시트의 롱 슬라이드와 리클라이닝, 15개나 되는 수납공간을 갖추고 있다. 무브가 터보, 2WD, 4WD 등 10개나 되는 트림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200여종이나 되는 다양성과 이런 풍부한 사양이 일본 경차의 저력이다.

취득세와 중량세, 자동차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의 정도가 비슷하고 배기량이 낮은데도 일본에서 경차가 대중화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주차문제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건 도쿄와 같은 일부 대도시의 얘기다. 경차를 타는 쪽, 바라보는 쪽의 인식이나 생각이 달라지려면 따라서 더 많은 차종이 나오고 그래서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그래야 일본처럼 한해 200만대는 못되도 50만대 정도는 팔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상반기 우리나라에서 팔핀 경차는 고작 6만4000대, 그나마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7%가 줄었고 전체 차량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해마다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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