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흉기차' 후진국형 제도가 만든 오명

김필수 대림대 교수

  • 입력 2018.06.24 08:20
  • 수정 2018.06.24 08:23
  • 기자명 오토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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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총합체, 자동차 부품 수는 약 3만 개에 이른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등장했고 환경과 안전, 편리성 등 요구조건이 늘면서 더욱 복잡해진 자동차는 따라서 고장 등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 됐다.

각종 전자 장비의 탑재로 더욱 복잡해지면서 소비자가 겪는 문제점을 제조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중요한 요소가 됐다. 특히 신차 구매 후 발생한 문제는 부담한 비용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돼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봉’이나 ‘마루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비자는 자동차에 문제가 발생하면 오직 제조사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제조사나 판매자의 서비스 의지가 약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나 지자체가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가 않다.

우리나라 자동차 기술과 산업은 선진국이 부러워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워낙 압축된 발전을 하다 보니 절름발이 상태로 부진한 발전을 이룬 부분이 자동차 문화다. 특히 자동차 서비스 부분은 후진국과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옷가지 하나도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교환해 주고 있지만, 고가의 자동차는 교환이나 환급이 불가능하다. 선량한 소비자를 울리거나 힘들게 만드는 사례도 주변에 허다하다. 신차에 문제가 발생해 고통스럽게 싸우는 소비자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교환이나 환급을 요청하여 성공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소비자가 제조사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능력, 법적 제도적 장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하고 판정을 받아도 권고에 불과하고 따라서 이행을 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이러다 보니 자동차 분야는 국내 소비자 영역에서 가장 취약한 불모지로 남아있다. 작년에 미국의 자동차 교환 환급 프로그램인 ‘레몬법’을 벤치마킹해 한국식 레몬법이 제정됐고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이 법 역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절름발이 법에 불과하다.

아무 의미도 없고 실질적으로 소비자에게 도움도 안 되는 유명무실한 허울 좋은 그럴듯한 법에 불과하다. 미국 레몬법에서 실질적인 효력이 작용하는 이유는 몇 번의 고장이나 기간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적 배경과 관련법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과하고 형식적으로 도입하다 보니 또 하나의 형식적인 법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형 레몬법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할까?

두 가지가 확실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우선 징벌적 보상제다. 미국은 메이커 등에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를 위한 보상금뿐만 아니라 벌칙 조항에 따른 천문학적 벌금이 부과된다. 폭스바겐과 토요타도 디젤게이트와 결함 은폐로 수조 원대의 징벌적 보상을 부담했다.

국내에는 징벌적 보상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3년 전 디젤게이트 이후 환경부에서 대기환경보전법을 적용해 폭스바겐 코리아에 3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지만, 안전 등 리콜이나 소비자를 위한 징벌적 보상의 사례는 없었다.

자동차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제조사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심지어 결함을 은폐하거나 축소를 해도 유명무실한 벌금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이를 판단할 전문가 집단도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소비자 측면에서 정부의 변화와 관련 제도도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나라는 운전자가 결함을 밝혀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의료과실 피해자에게 원인을 밝혀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물론 각종 신차에 문제가 발생해도 자동차 교환이나 환급을 할 필요가 없다. 설사 앞서 언급한 한국형 레몬법이 있어도 해당 사항이 아니라고 하면 소비자가 모든 원인과 이유를 밝혀야 하는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다.

미국은 재판 과정에서 소비자의 질문에 자동차 제조사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답변이 소홀하거나 해명을 하지 못하면 결과와 관계없이 보상을 합의하는 구조다. 우리와 근본부터 다르다.

한두 건의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미국 도로교통안전청(NHTSA) 등 정부 기관이 나서서 전문 실사를 하다 보니 제조사가 판매자는 적극적으로 소비자를 배려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같은 사안에 대한 접근과 해결 방식이 전혀 다르다.

오죽하면 굳이 나서서 할 필요가 없는 ‘알아서 져주는 법’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을까. 국내 자동차 소비자는 ‘봉’이고 ‘마루타’다. 현재 논란이 되는 현대ㆍ기아차의 ‘에바 가루 유입’ 문제가 버티기식 대응으로 사안을 키운 대표적인 사례다.

초기에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도 없이 소비자를 무시하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현대차 그룹은 자신들이 왜 ‘흉기차’로 불리고 있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자동차 시장을 보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자동차를 산업적 논리로만 바라보고 소비자를 보호하고 우선 배려하는 정책은 버려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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