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골차를 위한 변명, 우려내면 진국이 된다

  • 입력 2018.06.04 11:34
  • 수정 2018.06.04 11:37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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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차가 준중형 SM3의 가격을 대폭 인하하면서 새삼 또 '사골' 논란이 불거졌다. 2002년 1세대 모델이 나왔고 2009년 출시된 풀체인지 2세대가 지금까지 팔리면서 '참 오래 우려먹는다'는 비아냥이 나온 것.

평균 5년이면 과거의 흔적을 깡그리 지워버리고 말 그대로 풀체인지 신차를 만들어내는 국내 생산 신차의 교체 주기로 봤을 때, 10년이 다 돼가는 SM3는 사골 얘기를 들어도 마땅해 보인다.

SM3와 함께 대표적인 사골차로 불리는 모델이 또 있다. 기아자동차 대형 SUV 모하비는 2008년 처음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쌍용자동차도 코란도C를 7년째 우려먹고 있다.

판매 실적 또는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에는 차이가 있지만 신차 교체 주기가 길다는 이유만으로 '우려먹는다'는 식의 사골차로 조롱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링카 가운데 하나인 폭스바겐 골프는 2012년 출시된 7세대 버전이 지금까지 팔리고 있다. 8세대가 이르면 2019년, 아니면 2020년 출시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골프의 세대교체 주기는 8년 정도가 될 전망이다.

2011년 출시된 BMW 3시리즈도 다음 세대의 공개 일정이 아직 잡히지 않았고 2008년 데뷔한 포드 피에스타는 지난해 7세대로 모델 체인지가 됐다. 메르세데스 벤츠 대부분의 모델 교체 주기는 7년이다.

세대교체 주기가 빠르게 이뤄지는 것은 그만큼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따라서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조급함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내 자동차 디자인 관련학과의 모 교수는 "세대를 바꿀 때마다 디자인 전체를 통째로 바꿔버리는 현대차가 웃음거리가 됐던 적이 있다"면서 "제품, 특히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부심이 있다면 기존 스타일을 다듬는 것만으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폭스바겐 골프를 보자. 1세대에서 7세대로 거치는 동안 골프는 세련되게 다듬어 줬을 뿐, 전통을 버리지 않았다. 폭스바겐 디자이너도 "골프의 새로운 세대는 조금씩 비워나가는 것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폭스바겐 골프와 포드 피에스타를 세대별로 나열해 보면 마치 크로스 디졸브 효과와 같은 착시가 나타난다. 1세대와 7세대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도 세대 간 틈새가 크지 않아서다. 그렇게 조금씩 다듬어지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5년 이하의 짧은 세대교체, 그리고 과거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는 파격적인 변신은 일본식이다. 캠리를 포함, 북미 시장을 주력으로 하는 일본 메이커는 빠른 신차 교체 주기를 자신들의 경쟁력 가운데 하나로 내 세웠다.

일본 메이커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던 현대차와 기아차도 그런 주기를 쫓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추세에 국내 시장 그리고 소비자가 함께 길이 들여지고 말았다. 5년 정도 되면 사골 얘기를 듣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반면 우리가 늘 엄지를 들어 보이는 유럽, 특히 독일 브랜드의 모델 세대교체는 대부분 7년 이상이다. 우리는 새 차를 사고 5년이면 구형을 타는 꼴이지만 7년에서 8년 주기면 새 차의 가치가 그 만큼 더 오래 유지되는 효과가 있다.

SM3가 끝물인 것은 맞다. 그러나 10년을 끌고 온 것, 자랑할 일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피터 슈라이어 현대ㆍ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이 처음 손을 댄 모하비, 쌍용차 부활을 알린 코란도C,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이런 장수 모델의 진한 맛이 앞으로 더 우러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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