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양보하고 철강 지키고, 한ㆍ미 FTA 선방했다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대림대 교수

  • 입력 2018.03.27 08:42
  • 수정 2018.03.27 08:45
  • 기자명 오토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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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무분별한 보복 관세가 전 세계를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이 중 시작점인 일괄 철강 관세 25% 부과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의 부단한 노력으로 재개정 협상안이 타결됐고 협상결과는 선방을 했다고 평가해도 좋을 만한다. 

그러나 적자 규모가 큰 자동차 분야의 일방적인 양보를 전체로 한 만큼 추후 우려되는 상황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자동차 무역 적자는 한ㆍ미FTA 이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협상과정에서 빌미가 된 것은 트럼프의 자국주의와 보호무역 시각으로 본 편견이다.

한ㆍ미FTA가 체결된 후에도 우리 자동차 수출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미국차의 한국 수입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소고기를 비롯한 농수산물 수출이 급증하면서 자동차 적자와의 균형을 맞춰놨지만 자동차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우리를 압박했다.

철강 고관세를 피하기 위해 자동차를 너무 쉽게 양보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GM 문제가 협상 중이기 때문에 이런 양보가 추후 철강 관세 면제보다 더 큰 후유증을 남기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상 결과에 만족하기보다는 향후 예상되는 변화에 미리 대응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이번 타결 내용 중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자동차 분야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미국차의 국내 수입을 쉽게 해 줄 것과 자국의 입장을 반영하라는 것이다. 앞서의 조건은 국내 수입조건 중 항상 강조하는 안전과 환경 관련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수입되는 자동차가 같은 조건에서 잘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무역장벽은 사실 문제될 것이 없다.

미국산 자동차가 팔리지 않는 것은 품질 경쟁력에서 뒤쳐져있기 때문이다. 국가간 압력보다 소비자가 요구하는 품질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 치고 미국이 언급한 비관세 장벽은 국내의 안전과 환경기준과 무관한 메이커당 수입 쿼터제 2만5000대로 높여 달라는 주장이다.

이번 타결로 5만대가 미국 인증 통과 기준으로 그대로 수입되게 됐다. 우려스러운 것은 나중에는 아예 국내의 환경이나 안전기준 없이 미국 기준 그대로 들어오는 명분이 될 수 있고 당연히 전기차 등 다른 차종으로 연계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은 아직은 유럽산이나 일본산 수입차에 비하여 미국산은 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설사 수입 커터가 높아진다고 해도 수입차 점유율 15% 내외에 치열하게 수입차끼리 치열하게 싸우거나 국산차에 미치는 영향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다른 국가의 브랜드가 함께 열리는 위험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직 자국산 브랜드를 초점에 맞춘 만큼 다른 브랜드는 해당이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두 번째 조건은 우리가 생산하는 차종에 미국산 부품을 의무적으로 높여달라는 주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북미 자유무역협정에서도 같은 요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 부분은 우리에게 심각한 타격을 준다는 측면에서 절대 수용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치명적인 예봉은 피하고 생색을 내면서 피해는 최소화하는 선에서 타결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현대차그룹의 미국 알라바나 공장이나 조지아공장에서 생산하는 미국산 부품의 채택률을 높여달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자국산은 약 30% 이상을 사용하면 자국산으로 인정되는 만큼 지금까지 이러한 약속으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는 50~60% 이상을 자국산 부품 사용을 요구했다. 미국산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이고 수출은 줄어든다는 뜻이다.

따라서 부품 기업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지켜냈다는 의미에서도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세 번째는 우리가 미래의 먹거리로 노렸던 미국 픽업 트럭 시장의 포기이다. 이번 타결로 지난 100년간 미국 내에서 한번도 열어주지 않았던 픽업 시장 진출에 대한 기회는 물거품이 됐다.

지난 8년전 한ㆍ미 FTA 타결 시 미국 픽업 트럭 시장 개방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크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미국 픽업 트럭 시장은 연간 300만대 이상의 매머드급이지만 누구에도 문을 열어준 경우가 없는 독점 시장이다.

이번 재개정으로 ‘산타쿠르즈’ 등 픽업 컨셉트카 등을 발표하면서 미국 픽업 트럭 시장 진출을 도모한 현대차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타결로 다시 20년이 유예되면서 미국 픽업 시장 개방 가능성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러나 협상은 잘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결국 자동차 분야의 양보 중 현재의 이윤을 직접 줄이라는 요구는 쉽지 않지만 미래에 대한 시장은 포기하면 되는 만큼 최선의 선택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중부 지역의 러스트 벨트에 대한 우선 순위가 큰 만큼 미국 메이커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안을 우리가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생색을 낼 수 있게 됐다.

네 번째로 한ㆍ미FTA의 재협상을 통한 양보가 글로벌 기준과 다르다면 결국 우리는 한유럽 FTA와의 균형과도 어긋나면서 추후에 유럽의 불만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도 고민 해야 한다. 그들이라고 그냥 있을리가 만무하다. 

다섯 번째, 자동차 분야는 철강 등의 분야에 비하여 더욱 광범위한 영역을 관장하는 만큼 양보는 표면적으로 적게 나타날 수 있지만 후유증은 심각하고 오래갈 수 있다. 국내의 경우 현대차 그룹을 포함해 자동차 산업은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GM 문제는 기본이고 노사문제, 강성노조 문제, 고비용 저생산 구조, 통상임금 문제는 물론이고 정부도 반기업적 흐름으로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여기에 현대차 그룹은 이미 미국 시장 등에서 점유율이 줄고 있다. 부품 공급을 하는 1~4차 중소 협력사도 따라서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여섯 번째, 정부의 경우도 한두 분야의 일괄 타결도 좋지만 일방적인 분야의 심각한 장애는 도리어 국내 시장에 더 큰 영향을 주는 만큼 다른 분야와의 협상과 설득을 통하여 전체적인 영향을 연착륙 시키는 묘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 타결로 1차적인 심각성은 피했지만 차후 문제가 부각될 연비 등의 사안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더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냉정하고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일곱 번째, 이번 타결로 가장 영향을 받는 대상은 바로 현대차 그룹이다. 없는 문제를 만들어 어거지격으로 타결된 만큼 자동차 분야 양보에 따른 모든 손해는 현대차 그룹이 떠안게 됐다. 노사 문제 등 발 빠른 해결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동시에 미국 투자 등 한발 빠른 선택과 집중으로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는 전략도 요구된다.

한ㆍ미 FTA 재협상은 잘 했다. 우리의 선택폭이 적은 상태에서 선방했다. 당분간 쉽지 않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시기인 만큼 정부의 총괄적이고 체계적인 대처가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정부의 역할이 그 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앞으로도 선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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