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응답하라 2000, 르노삼성차가 다시 잡은 택시

  • 입력 2018.03.15 09:01
  • 수정 2018.03.15 09:21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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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르노삼성 출범 이후 SM5가 월간 판매 1만대를 돌파하자 이를 축하하는 임직원
2002년 6월, 르노삼성 출범 이후 SM5가 월간 판매 1만대를 돌파하자 이를 축하하는 임직원

2000년 9월, 르노에 인수된 삼성자동차가 르노삼성자동차로 출범한다. 그리고 그해 12월까지 단 3개월 동안 SM5 단일 모델 하나로 1만2500여 대를 판다. 월평균 4000대 수준이지만 별 것 아닌 것이 아니다.

삼성자동차로 연간 6000대를 팔았던 시절이었다. 2001년에는 SM5의 생산 누계가 10만 대를 돌파했고 2002년 5월에는 1만 대가 팔렸다. 월간 판매량이 1만 2000대를 기록하면서 현대차 쏘나타를 추월했던 때도 있었다. 

18년이 지났지만 월 1만 대는 현대차 그랜저가 요즘 성수기 때나 간혹 보여주는 대기록이다. SM5가 강력한 시장 지배자 쏘나타를 위협할 수 있었던 것은 '반영구적 타이밍 체인', '원-프라이스', '신차교환 서비스', '5년, 10만km 무상보증' 등 지금도 낯설지 않은 압도적 내구 품질과 선도적 마케팅 효과였다. 

그러나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 이름도 생소한 르노의 인수로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SM5가 돌풍을 일으키게 한 최고의 공신은 '택시'였다. 당시 르노삼성차의 한 임원은 "쌓여있는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택시 시장을 공략했는데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10만km마다 수십만 원을 주고 갈아야 하는 타이밍 벨트 대신 반영구적 사용이 가능한 타이밍 체인, 고속도로에서 대파되는 사고가 났는데 운전자가 멀쩡했다, 끝내주는 서비스" 따위의 입소문이 택시를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갔다.

홍보 전도사를 자처한 택시 기사의 활약으로 르노삼성차에는 '충성고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SM5 전체 판매량의 절반을 LPG가 차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 2세대 SM5를 내놓고 '고급화 전략'을 택하면서 택시 점유율이 뚝 떨어졌다. 

초기와 다르게 2세대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판매량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2010년 등장한 3세대도 이를 뒤집지 못했다. 특히 3세대는 요금 미터기를 달 공간조차 없다는 불만을 들으면서 택시 시장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택시를 홀대한 대가는 컸다. SM3, QM5 등 라인업이 늘었지만 르노삼성차의 내수 순위가 꼴찌로 추락한 순간도 있었다. 2016년 3월 출시된 SM6가 판도를 바꿔놨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르노삼성차는 '택시를 빼면 중형 세단 판매 1위는 SM6'라는 억지까지 부렸지만 2017년 내수 판매는 9.5%나 줄었다. 르노 브랜드의 양산차나 신차를 투입하는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르노삼성차가 빼든 비장의 카드는 다시 '택시'다.

르노삼성차는 그 동안 SM5와 SM6를 병행 생산하고 SM6의 택시 모델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왔다. 그래도 SM6 택시 투입은 지금의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상책'으로 볼 수 있다. 

택시 시장을 얕보는 쪽도 있고 현대차 쏘나타의 벽을 깨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쪽도 있지만 도넛 탱크와 룸미러 미터기로 무장한 SM6 택시는 만만치 않은 상품 경쟁력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만난 한 택시 기사는 "차 안이 깨끗해질 것 같아 SM6 모델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차는 미터기에 내비게이션, 호출기까지 달아 놔서 볼 때마다 정신이 다 사납다"며 "룸미러 미터기면 이렇게 차 망쳐가면서 따로 달 필요가 없고 손님도 보기 좋아할 것 같다"며 "큰 짐 가진 승객은 태우지도 못했는데 널찍한 트렁크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데쟈부처럼 SM6 택시에 대한 반응이 18년 전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이전까지 월평균 30~40대 수준이었던 택시 계약 건수가 SM6 택시 모델 출시 하루 만에 80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첫날 계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은 개인택시 사업자 위주로 계약이 이뤄지고 있지만 시장 상황에 맞춰 법인 시장 공략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르노삼성차가 SM6의 택시 모델이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또 당장 효과로 나타날지 판단하기도 아직은 이르다.

그러나 SM5 택시에 대한 향수는 아직 짙게 남아있다. SM6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르노삼성차의 강점인 서비스가 어우러지면 택시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그때가 다시 응답을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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