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림픽 한정판 1988 프레스토 AMX 시승기

  • 입력 2018.01.10 11:25
  • 수정 2018.01.10 11:26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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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가 몰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강남 부자들의 '부의 상징'이기도 했지". 3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외관 상태가 완벽하게 유지된 1988년산 현대차 프레스토 AMX 앞에 섰다. 그것도 건국 이래 최대 이벤트 88 서울올림픽 공식 자동차로 지정된 현대차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딱 1만 대만 만든 특별 한정판 '올림픽 팩'이다.

올림픽 팩 답게 요즘으로 치면 혁신적인 '국내 최초 사양'이 가득했다. 돌돌이로 올리고 내렸던 1열 창문이 버튼 하나로 작동하고 아웃사이드 미러를 실내에서 조절할 수 있는 버튼도 보인다. 13인치 편평 타이어와 블랙 알로이 휠은 지금 봐도 멋지다. 측면 전체를 감싸듯 둘러싼 밴드, 아웃사이드 미러와 라디에이터 그릴은 비취색 외장과 같은 색을 사용해 멋을 부렸다. 

리어 가니시와 5마일 범퍼는 지금 봐도 존경스러운 쥬지아로의 차체 디자인과 어울려 중후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오디오를 켜면 매끄럽게 솟아오르는 안테나도 보이지 않는 뒷쪽에 있어 파손이 잦다는 이유로 앞쪽 보닛으로 옮겨놨다.

차주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덕분에 프레스토 아멕스의 외부는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보디는 물론, 하부의 미세한 부분을 빼면 부식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차체를 흔들어도 작은 삐걱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접합부 상태가 양호하다는 의미다.

실내도 오디오를 빼면 오리지널 상태 그대로다. 차주 김 용(60세, 경기도 일산)씨는 "오디오는 카세트테이프를 구하기도 또 들을 일이 없어지면서 바꿔 버렸다"라고 했다. 낡은 직물 시트, 플로어 매트도 그대로다. 대시보드를 중심으로 인테리어는 반듯반듯한 수평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특별한 기능이 없었던 만큼 센터패시아는 공조장치와 오디오, 에어벤트로 단출하게 채워졌다.

대시보드의 디지털시계, 계기반 중앙의 대형 트립 컴퓨터도 당시 프레스토에 처음 적용된 첨단 사양이다. 대시보드의 오른쪽 좌석 앞에는 서울 올림픽 공식 자동차 배지가 달려있고 콘솔에는 오토 도어 글라스 버튼과 주차 브레이크, 그리고 5단 수동변속기의 레버와 함께 대용량(?) 수납공간이 센터패시아 아래쪽에 마련됐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시가 잭과 재떨이도 보인다. 외관과 다르게 실내는 오래된 흔적을 감추지는 못했지만 오랜된 것이 주는 아늑함과 오리지널이 주는 향수로 가득했고 흐트러짐도 없었다. 잘 관리된 차, 구동계의 상태는 어떨까.

키를 돌려 시동을 걸고 여성 운전자를 위해 안쪽에서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변경된 보닛을 열었다. 엔진 소리가 일정하다. 진동으로 퍼지는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구석구석을 살펴봤지만 오일 한 방울 누유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30년 동안 이 정도 상태로 엔진을 관리하려면 보통 정성으로는 불가능하다"며 "매일매일 보닛을 열어보고 육안이나 촉감으로 느슨해진 벨트나 조임 상태, 누유 등을 확인하고 선대응 했기 때문에 가능한 상태"라고 놀라워했다.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차주 김용 씨는 "직업상 습관처럼 프레스토를 살펴본다. 언더코팅에도 신경을 써서 하체 부식을 예방하고 고령 차에서 쉽게 발생하는 고장 부위를 꼼꼼하게 살펴본 후 이상이 있기 전 먼저 조치한다. 소모품 같은 건 적정 주기 이전에 모두 교환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자동차를 오래 타려면 예방주사, 그러니까 고장 발생 전 점검하고 조치해야 한다"며 "고장이 발생 한 후 수리는 수술이고 따라서 반복이 되면 상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출발했지만 서른 살 프레스토의 발진감이나 페달감, 승차감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1995년 국산 최초의 전륜 구동 타입으로 개발된 프레스토에는 미쓰비시의 4기통짜리 1.3ℓ, 1.5ℓ 엔진이 탑재됐다. 시승을 한 프레스토는 1.5ℓ엔진을 탑재, 87마력의 최고출력과 12.5kg.m의 최대 토크 제원을 갖고 있다. 최고 속도는 제원상 160km/h를 낼 수 있다.

배기량에 비하면 초라한 제원이지만 도심 주행에는 무리가 없었다. 힘들이지 않고 가뿐하게 필요한 힘을 낸다. 스티어링 휠 조작에 많은 힘을 들여야 하고 수동 변속기는 번거로웠지만 멈추고 싶지 않을 정도로 주행 질감이 양호했다.

차주 김 씨는 "고속도로에서는 제한속도 이상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라며 "연비도 15km/ℓ 이상 나오기 때문에 앞으로도 50만 km 이상은 더 탈 작정"이라고 말했다. 시승차의 누적 주행거리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몇 번이나 최고 표시 거리를 넘어 다시 시작했는지 기억을 못해서다.

시승을 마치자 김 씨는 타이어에서 오물을 닦아내고 바로 커버를 씌웠다. 400만 원 후반대를 조금 넘는 프레스토의 가격에는 이 커버도 포함이 돼 있었다. 

임 대표는 "30년 넘게 탈 수 있는 자동차는 흔하지 않다. 차를 잘 만들었거나 관리를 잘 했거나 두 가지 경우인데, 그때 우리 기술 수준으로 보면 후자의 경우"라며 "따라서 100만 km의 내구성을 가진 요즘 자동차는 피부관리, 즉 부식 관리만 잘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어쨌든 전국 자동차 등록 대수가 약 100만 대에 불과했던 당시, 획기적인 편의 그리고 첨단 사양으로 무장한 프레스토의 등장은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일기 시작한 마이카 붐에 불을 댕겼을 법하다.

차명이 의미하는 매우 빠르게(Presto)처럼 당시로서는 꽤 비싼 400만 원대 중반 이상의 높은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렸고 미국 투입 첫해인 1986년 한 해에만 17만여 대나 팔렸던 전설이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반떼(수출명 엘란트라)는 20만 8000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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