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순망치한’ 통상임금은 노사 공멸의 신호

  • 입력 2017.08.11 09:25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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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순망치한:脣亡齒寒)’. 오는 17일로 연기된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이 산업계를 초긴장시키고 있다. 회사는 신의 성실 원칙(신의칙)에 위반되기 때문에 미지급된 통상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례에 희망을 걸고 있고 노조는 역시 대법원이 제시한 요건인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승소를 믿고 있다. 

노조가 승소하면 기아차는 지난 3년간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는 상여금과 수당을 기준으로 수당과 퇴직금 등을 다시 산정해 그 소급분과 지연 이자 3조1000억여 원을 지급해야 한다. 그렇다면 3조 원이 넘는 임금을 추가로 받게 될 노조는 웃을 수 있을까. 

완성차 5개사가 회원으로 있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1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노조가 승소하면 기업은 해외로 생산 시설을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놨다. 협회는 생산 거점의 해외 이전 검토로 초점이 모이자 이에 부담을 갖고 같은 날 와전된 것이라는 의미의 해명 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현대차와 기아차, 쌍용차와 한국GM, 로노삼성차 등 5개 회원사가 협회 공식 입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해외 이전, 철수 등 극단적 얘기가 오간 것은 사실이라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노조의 승소로 결론이 나면 주요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 그리고 국내 생산량을 줄이고 해외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 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종의 특성상 정규 근로 시간 이외의 휴일 및 야근 수당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당장 국내 생산량 감축을 통해 임금 지출 부담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이 연간 700%의 상여금을 주요 쟁점으로 하고 있지만 적자 위기로 내몰렸을 경우 모든 수단과 수단을 취해야 하는 기아차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대대적인 구조조정, 인건비 지출을 줄이기 위한 묘수를 찾아내야 하고 그 고통의 대부분은 근로자의 몫으로 전가될 것이 자명하다. 

어느 쪽이 승소하든 최종 대법원 판결까지 가는 과정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1심에서 노조가 승소하면 회사는 충당금 적립과 소송 비용에 따른 부담을 안아야 하고 회사가 승소해도 노조와의 갈등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기아차 영업이익은 2016년 2조7546억 원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 44% 급락한 7870억 원에 그쳤다. 2012년 이후 기아차의 매출은 매년 늘고 있지만, 인건비와 영업비용,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이 늘어나면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증가율은 해마다 줄었다.

판매는 내수 부진 장기화와 중국발 사드 여파로 최악이고 따라서 올해 영업이익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영업이익을 초과하는 추가 지출 요인이 발생하면 기업은 적자가 된다. 

법원이 어떤 판결을 하느냐에 따라 기아차는 국제금융위기로 북미 시장에서 고전했던 2008년 이후 처음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총체적 위기의 상황에서 노사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그래서 어느 한쪽의 부재만으로도 공멸할 수 있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분명한 이치를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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