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 보그 SE 4.4, 골리앗 체구에 다윗의 민첩함

  • 입력 2017.03.22 11:45
  • 수정 2017.03.23 10:54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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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크다. 3억 원에 육박하는 롱 휠베이스는 5m가 넘는 전장을 갖고 있고 시승 모델인 레인지로버 보그 SE 4.4는 여기에서 딱 1mm 모자란 4999mm의 전장을 갖고 있다. 전장뿐만 아니라 제원 전체가 무시무시하다. 휠베이스는 2922mm, 전폭은 2220mm다. 

LR-SDV8 4.4ℓ 엔진은 339마력(3500rpm)의 최고 출력과 75.5kg.m(1750~2250rpm)의 최대 토크를 낸다. 덕분에 엄청난 체구에서 6.9초의 가속력(0~100km/h 가속 시간)이 나온다. 투박하고 굵은 상남자 스타일에 이런 성능을 갖고 있어서 랜드로버는 대부분 남자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하지만 랜드로버 마니아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오프로드 주행 능력 그리고 완벽하게 갖춰진 주행 안전 보조 시스템과 아낌없이 사용된 고급 사양에 열광한다. 1억8230만 원이라는 절대 가볍지 않은 가격에도 ‘제값’을 하는 모델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도 듣는다.

 

덕분에 레인지로버는 1970년 이후 지금까지 럭셔리 SUV의 최강자로 군림을 하고 있다. 시승모델은 2017년형 레인지로버다. 첨단 사양이 대폭 보강됐고 무엇보다 한국 시장의 니즈를 수용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대표적인 것인 T맵과 연동한 내비게이션, 한글 매뉴얼, 스마트폰 연동 커넥티비티 기능이다. 운전과 탑승에 필요한 대부분 기능은 10.2인치와 21.9인치의 디지털 클러스터와 대형 센터 모니터를 통해 콘트롤이 가능하다.

다이얼 시프트와 돌출되지 않은 드라이버 모드 셀렉트 버튼은 오리지널 메탈 피니셔의 질감이 가진 청결한 이미지답게 센터 콘솔 주변을 말끔하게 만들었다. 평범하지 않은 대시보드의 레이아웃과 스티어링 휠, 최고급 가죽 세미 애널린, 명품 메르디앙 오디오, 2개의 모니터와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공조장치, 2열 시트까지 세심하게 배려된 열선과 통풍 기능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호사스럽게 한다.

 

공간은 여유가 넘친다. 2922mm의 휠 베이스에서 나오는 1열과 2열의 무릎, 머리, 어깨 공간이 넉넉하고 시트 베리에이션으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기본 909ℓ의 트렁크 적재 용량은 이를 통해 최대 2030ℓ까지 확장된다. 주목할 것은 인 컨트롤 터치 프로다.

오디오, 내비게이션, 차량 세팅, 서라운드 카메라 영상, 주차 보조 기능까지 제공하는데 클러스터도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 리모트 앱 에센셜을 설치하면 연료잔량, 주행 가능 거리, 주차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원격으로 공조 장치를 조절하고 도어를 잠그고 해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외관의 변화는 크지 않다. 레인지로버를 상징하는 하부 엑센트 그래픽, 루프라인, 웨이스트 라인 그리고 프런트 엔드의 곡선, 후면을 강하게 떠받친 디퓨저, 세로 라인의 캐릭터 라인, 플로팅 루프가 강한 개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시승모델은 4367cc V8 엔진을 올린 4.4ℓ 모델이다. 출력과 토크의 수치는 배기량을 봤을 때 특별하지는 않다. 그러나 ZF 8단 자동변속기와 함께 2455kg의 중량을 밀어내는 힘은 동급 최고다. 1마력으로 감당해야 하는 중량 부담이 7.24kg으로 3.0ℓ급 이상 SUV 모델 가운데 가장 낮다.

따라서 달리는 맛이 경쾌하고 거구의 차체를 다루기도 쉽다. 유연하게 그리고 고분고분하게 의도하는 바를 따라 준다. 1750rpm부터 시작하는 최대토크로 밀어붙이는 맛도 삼삼하다. 6.9초의 제로백에서 나타나는 가속력까지 더해져서 발진, 저속, 그리고 중속에서 고속으로 이어지는 연결감이 매끄럽고 강력하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런 성능들이 디젤차답지 않게 아주 조용하게 발휘된다는 점이다. 정지 상태에서의 아이들링 진동과 소음까지 완벽하게 감추지는 못했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가솔린차와 헷갈리기 시작한다. 과격한 핸들링에도 균형을 잃거나 차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웬만한 과속방지턱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바운스도 좋다. 골리앗의  체구에 비상한 머리와 민첩한 몸 놀림을 갖고 있는 다윗이 모두 보인다. 조향과 페달을 다루는 것 그리고 차체 콘트롤이 쉽고 시야가 좋아서 장담하건대 여성도 운전하기가 어렵지 않다. 

오프로드라고 하기는 좀 민망했지만 요즘 흔치 않은 비포장길을 어렵게 찾아내 달리면서 차체 흔들림이 의외로 많지 않고, 내리막 경사로를 알아서 느린 속도로 타고 내려 오고, 후진을 할 때 후방 지면에 장애물이 있으면 차고를 높여야 움직이는 것을 경험했다. 

 

이런 성능은 시스템에 의해 완성됐다. 레인지로버는 온로드와 오프로드에 대응해 수많은 첨단 테크놀로지를 반영했다. 알루미늄 차체에서 나오는 견고한 보디, 노면의 상황에 즉각 대응하는 어댑티브 다이내믹스와 코너링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돕는 다이내믹 리스폰스, 험로와 경사로에서 속도를 제어한다.

지형에 자동으로 반응해 엔진, 변속 장치, 센터 디퍼렌셜 및 새시 시스템을 설정하는 시스템까지 일일이 거하기 어려운 수 십여 개의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차선이탈, 전방추돌, 사각지대 감지, 자동주차로 구성된 AIDS도 적용됐다.

이 시승기에 레인지로버의 능력을 모두 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바라보면 볼수록, 돈 걱정이 없다면, 갖고 싶은 욕구가 넘친다. 그러나 1억8290만원에 부담을 느끼지 않은 정도의 경제력은 살아 있을 때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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