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내면 진국, 그래서 빛나는 국산 사골차

  • 입력 2017.02.03 09:04
  • 기자명 김흥식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골[명사] 짐승, 특히 소의 네 다리뼈. 주로 몸을 보신하는 데 쓴다. 이걸 푹 고우고 잘 우려내면 진국이 된다".

1985년 11월 1세대로 출발한 현대차 쏘나타는 2014년 3월 7세대로 이어졌다. 평균 4년 1개월 만에 완전변경 모델이 나왔다. 11년 먼저 나온 폭스바겐 골프는 2012년 7세대로 계보를 이었다. 평균 5년 4개월마다 완전변경 모델이 나왔고 현재 판매되는 골프는 7세대의 부분변경이다.

새것에 열광하는 소비자, 제품에 대한 자신감 부족, 부족한 상품성을 신상으로 메워 나갈 수 밖에 없는 열등감이 국산차의 변경 주기를 빠르게 했다. 전 세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도 국산차의 공통점이다. 쏘나타만 해도 6세대 YF와 7세대 LF의 유사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아자동차 모하비(2008년 출시)

폭스바겐 골프는 1세대를 기반으로 원석을 다듬어 내듯 조금씩 덜어내며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시켜왔다. 반면, 국산차에도 사골 소리를 듣는 모델이 있다. 새것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에게 ‘그만 좀 우려먹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우직하게 버티고 있다.

수 천억 원의 개발비를 들여야 하는 신차보다 세월에 맞춰 진득한 맛을 내며 제 역할을 하는 사골차야 말로 업체 측면에서 보면 효자다. 대표적인 모델이 기아차 모하비다. 2008년 처음 출시됐고 한때 단종이 되기도 했지만 1세대의 원형을 9년째 유지하고 있다. 

사골 소리를 들으면서도 잘 팔린다. 모하비는 지난해 연간 1만5059대가 팔렸다. 2월 재출시되고 판매를 시작해 월평균 1360대, 지난달 1425대의 실적을 올렸다. 동급은 물론, 중대형 SUV 전체로 봐도 부끄럽지 않은 기록이다.

르노삼성차 SM3 (2008년 출시)

르노삼성차 SM3도 2009년 출시된 2세대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네오(2014년)로 부제를 달고 부분 변경만으로 8년 이상 원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모하비처럼 좋은 성적은 내지 못하고 있다.

한 달 공을 들여도 수 백 대 판매에 그치고 있다. 박동훈 르노삼성차 사장이 “사골이 맞다”고 인정한 SM3는 그러나 올해 사정이 조금은 달라질 전망이다. 박 사장은 지난 1월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SM3와 QM3의 새로운 가치를 조명하고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쌍용차 코란도C도 렉스턴과 함께 사골 소리를 듣는다. 올해 완전변경 신차(Y400)가 나올 예정인 렉스턴과 다르게 코란도C는 1969년부터 이어진 최장수 브랜드로 2005년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횡포로 단종됐다가 2011년 부활해 쌍용차 도약의 시발점이 됐다. 

쌍용자동차 코란도 C (2011년 출시)

좋지 않은 성적에도 올해 그리고 내년까지 코란도C의 세대교체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쉽지 않지만, 월평균 1000대 수준만 유지해도 된다는 것이 쌍용차의 생각이다. 팔리지 않아도 최악의 경우 손해를 좀 봐도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는 사골차는 더 많아져야 한다. 일치하는 유전자 하나 없이 차명만으로 계보를 이어가서는 우리의 자동차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수입차 업체의 수석 디자이너가 “기존 세대를 다듬어 나가는 것, 조금씩 덜어내는 것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라며 “세대를 이어가야 하는 모델의 디자인을 통째로 바꾸는 것은 가장 쉬운 선택”이라고 말한 지적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정성으로 우려낸 사골의 깊은 맛을 느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