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를 뒤엎은 신형 그랜저, 성격까지 바꿨다.

  • 입력 2016.11.28 01:58
  • 수정 2016.11.28 16:53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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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를 바꾸다’. 절묘한 카피다. 그만큼 신형 그랜저에서 그랜저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30년 동안 준대형 세단 지존의 자리를 지킨 그랜저를 현대차가 이렇게 깡그리 바꿔버린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내수 판매가 급감했고 믿었던 쏘나타는 강력한 경쟁차의 등장으로 기세가 꺾였다. 한때 월 판매가 1만 대를 육박했던 그랜저도 지난 7월 이후 3000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급해진 현대차는 그랜저의 타깃 연령대를 낮추는 것으로 반전을 노렸다.

생김새부터 달리는 특성까지 뒤엎어 버렸다. 현대차의 노림수는 일단 효과를 본 것으로 보인다. 사전계약자 분석 결과를 보면 30대와 40대가 48%를 점유했다. 이전 세대인 HG는 41%였다. 대신 38%였던 50대의 비중이 33%로 낮아졌다. 40대 중ㆍ후반의 점잖은 세대를 상징했던 그랜저가 젊어지면서 사전 계약 대수는 3주간 2만7000대를 기록했다. 기록적인 수치고 지금 계약하면 최소 2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데도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고 한다.

캐스케이딩 그릴 하나로 각을 잡았다.

 
 
 

무난했던 그랜저의 외관은 6세대에서 성깔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캐스케이딩 그릴을 중심으로 보닛의 라인을 집중시키고 방향지시등과 에어 인테이크 홀에 크롬 베젤과 가니쉬로 과하지 않은 멋을 부려 감각적인 앞모습을 완성했다. 캐스팅 그릴은 이전의 헥사고날 타입보다 아랫단을 좁혀 스포티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헤드램프와 함께 캐스팅 그릴의 위치를 최대한 바닥 쪽으로 낮춰 스탠스의 안정감을 노렸고 LED 방향지시등은 적당한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해 준다. 측면은 시원하다. 비례가 좋고 간결하고 후드에서 리어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사이드 캐릭터 라인이 주는 역동성도 보기가 좋다. 특히 수평으로 이어지다 끝단에서 리듬을 보태 단조로운 측면에 포인트를 줬다. 

후면부에는 그랜저의 전통 하나를 남겨놨다. 리어 콤비 램프를 크롬 가니쉬로 연결하고 듀얼머플러가 주는 안정감도 돋보인다. 제동등이 들어왔을 때는 평범하지만 미등 전체가 켜지면 독특해지고 보기도 좋다. 디테일도 뛰어나다. 방향지시등의 차체 연결 부위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이고 각 단면 하나도 소홀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차체 사이즈는 조금씩 커졌다. 전장이 4920mm에서 4930mm,  전폭은 1860mm에서 1865mm로 늘었다. 전고(1470mm)와 축거(2845mm)로 이전과 같다. 전장과 전고가 길어지고 높아진 만큼 실내 공간의 여유는 많아졌다.

여백의 美 살렸다는데 평범한 인테리어

 
 
 

센터페시아 상단에 생뚱맞게 자리를 잡은 아날로그 시계의 주변 휑한 공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벤틀리에서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이상엽 디자이너는 ‘한국적 여백의 美’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미적 해석이 쉽지 않다.

센터페시아와 클러스터, 센터 콘솔의 구성은 평범하다. 우드와 메탈로 요란을 떨었던 이전과 다르게 리얼 알루미늄 가니쉬와 블랙 메탈, 투톤(일부는 블랙) 대시보드 정도로 절제했다. 스티어링 휠과 변속기 노브의 그립감은 묵직하다.

스티어링 휠의 조작감 역시 직관적이다. 고분고분했던 이전의 그랜저와 분명한 차이가 난다. 프라임 나파가죽 시트도 단단한 편이다. 시트에는 일반적인 것과 다른 다양한 기능이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열선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온도를 낮춰주고 끝단에 슬라이딩 및 회전 기능을 추가해 허벅지를 편하게 했다. 열선 시트는 2열에도 적용됐다.

여유로움을 가장 크게 느끼는 곳은 2열 무릎 공간이다. 앞줄을 충분히 확보해도 다리가 펴질 정도의 공간이 나온다. 180cm의 신장을 가진 누군가를 앉혀놔도 머리, 무릎에 여유가 있다며 공간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극찬을 했다. 반면 돌출된 중간 시트는 사정이 다르다. 작은 신장도 머리가 닿는다. CD 체인저가 센터 콘솔 암레스트에 자리를 잡은 것은 독특한 구성이다. 스마트폰 무선충전기, 애플 카플레이와 미러링크를 지원하는 폰 커넥티비티도 제공된다.

주행성능, 단단하고 분명하고 안전하게

 
 
 

연령대를 끌어내리기 위해 현대차가 신형 그랜저에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주행성능이다. 이를 위해 보디 골격의 핫스탬핑 적용 부위를 5개에서 11개, 구조용 접착제는 9.8배나 늘려 차체의 여러 강성을 높였다. 플랫폼의 지오메트리를 개선하고 전륜과 후륜 서스펜션의 구조, 로어암 등 많은 부분도 튜닝했다. 시프트와 토션바의 강성도 증대시켰고 조타 정밀도를 향상하기 위해 ECU의 처리 단위와 속도 향상에도 신경을 썼다.

모두가 차체 거동의 안정감을 살리고 임팩트 여진을 느끼며 기분 좋게 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현대차의 설명이다. N.V.H는 흡차음제를 보강하고 차음유리와 3중 실링, 휠 강성 증대로 외부소음의 실내 유입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실제 주행에서 이런 노력의 흔적들이 보였다.  저속에서는 덜하지만, 고속까지 속도가 상승하는 맛이 부드럽다. 8단 자동변속기는 변속 시점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속도의 상승에 비례해 유연하게 시프트업이 이뤄진다.

적당한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컴포트 모드나 스포츠 모드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해도 제법 앙칼진 소리를 낸다. 스티어링 휠은 고집스럽게 C-MDPS 방식을 적용했다. 장점은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신뢰가 떨어진 것이 단점이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패밀리 세단에 적합하고 ECU 업그레이드로 처리 단위와 속도를 향상해 조타 정밀도를 높였다며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 말대로 조향감은 예민하고 반응이 빠르다. 피드백도 분명해 운전의 재미를 높여준다.

코너링은 무난하다. 거구의 차체를 빠르게 잡아 돌려도 좌우 균형이 잘 유지되고 차선을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작다. 제동 느낌도 만족스럽다. 부스터 사이즈와 배력비를 키우고 페달비를 개선해 고속에서 급제동해도 설 자리를 확실하게 찾는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나서 가속페달에 힘을 줘봤다. 순간적으로 엔진회전수가 6000rpm 인근까지 치솟고 빠르게 속도가 상승한다. 31.4kg.m의 최대토크와 266마력의 최고출력은 넉넉하게 차체를 이끈다. 경쾌하게 달려준다. 우려했던 뒷부분의 롤링도 무난한 수준에서 억제가 된다. 단단한 하체가 차체 전체의 근육을 단련해 속도나 도로의 상황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안정감을 보여준다.

타이어의 성능도 보탬이 된다. 시승차인 가솔린 3.0 익스클루시브 스페셜에는 미쉐린(245/40R19)이 장착됐다. 편평비도 그렇고 달리는 맛의 풍미를 더 해 준다.

잘 달리고 안전하게, 똑똑해진 첨단 장치들

 
 

드라이브 모드의 스마트 모드가 생소했다. 사용자의 운전 성향에 맞춰 학습하는 로직을 통해 자동으로 운전 모드를 전환해 주는 시스템이다. 운전 중 드라이브 모드를 따로 설정하지 않아도 거칠게 운전을 하면 스포츠 모드에 가깝게 자동 전환되는 식이다.

스마트 센스도 처음 적용됐다. 제네시스 브랜드 EQ900에 적용된 것과 같은 첨단운전보조시스템(ADAS)으로 고속도로주행지원 시스템이 빠진 대신 주행중 뒷쪽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는 후방카메라가 추가됐다. 여기에는 보행자나 장애물을 감지하면 스스로 급제동을 하고 어드밴스드 스마트크루즈 컨트롤과 주행 조향 보조시스템, 부주의 운전 경보 시스템, 후측방 충돌 회피 지원시스템이 포함돼 있다.

쉽게 얘기하면 의도하지 않는 이탈을 경고하면서 차선을 유지하도록 해주고 크루즈 설정을 하면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알아서 유지해주는 식이다. 스마트크루즈 컨트롤을 작동하면 일정한 시간 동안 자율주행을 하는 식이다.  제한속도를 초과하면 위험 구간에서 자동으로 안전 속도를 유지해주는 기능도 있다.

[총평]

 

신형 그랜저가 많은 부분에서 젊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생김새부터 인테리어까지 고루했던 것들을 꽤 많이 들어냈다. 무엇보다 주행 감성의 변화가 돋보인다. 견고한 차체의 민첩한 놀림, 어색하지 않은 사운드, 속도가 상승하는 느낌까지 정성스럽게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가격도 적당하다. 적게는 3055만원(가솔린 2.4 모던)에서 3870만원(가솔린 3.0 익스클루시브 스페셜)이면 수입차로 방향을 잡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가격이다.

다만 기존 그랜저의 주 고객층과 달리 현대차가 기대하는 30~40대는 상품을 읽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그먼트를 높여 선택한 만큼 작은 흠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의 주 소비층 연령대가 낮아진 것을 반기고 있지만, 이것이 독(毒)이 되지 않으려면 신형 그랜저를 최상의 품질로 만들어 내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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