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일 명장, 현대차 돈 받아서 정비공장 하자고?

  • 입력 2016.10.06 08:50
  • 수정 2016.10.06 11:59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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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심각한 차량 결함 사실을 은폐하고 축소했다며 미국 NHTSA(국립고속도로교통안전국)에 관련 사실을 제보한 내부고발자 A 씨와 자동차 명장 박병일(사진) 씨가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3일, 자동차 커뮤니티 사이트 보배드림에 “현대기아차 리콜 은폐 사태를 알린 장본인 김진수 부장”이라며 올라온 게시물이 발단이 됐다.

A 씨는 이 글에서 “(박 명장)이 리콜 기밀자료를 가지고 회사(현대차)에 변호사를 보내 협상하여 회사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800평 정비공장을 인수하여 공장과 함께 중고매매업을 동업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 기밀자료를 넘겨 달라고 했고 응하지 않으면 본인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하여, 공익제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국내 언론에 이를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박 명장이 김 씨의 내부 자료를 이용해 현대차에 금품을 요구하자는 제안을 했고 이를 거부하자 자신의 공익 제보 활동을 회사에 알리려고 해 언론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게 됐다는 것이 게시글의 요지다. 두 사람은 지난해 8월부터 A씨가 회사에서 가지고 나온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며 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사이다.

그동안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와 SNS에는 두 사람이 회사의 품질 관리 관행을 바꾸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가득하다. 김 씨의 주장에 대해 박 명장은 ‘소설’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인천에 있는 박 명장의 사무실에 그를 만났다. 현대차 내부 고발 사태가 어떤 경위를 거쳐 진행되어 왔는지 또 막후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들어봤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게 된 동기는

2015년 8월 29일이다. 자신을 현대기아차 품질 부분에 근무하는 누구라며 지난달 소송에서 승소했고 명예훼손으로 대응하겠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보고 알았다며 회사(현대차)의 불법적인 관행으로 많은 고객이 무방비로 도로를 달리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군분투 중이니 시간이 되면 연락을 달라는 문자가 왔다. 거기에는 A씨 자신의 집 주소까지 있었다. 내가 연락을 했고 다음 날인 30일, A 씨의 딸이 주인으로 있는 용인의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현대차는 지난 2014년 12월, 박병일 씨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전문가 지위를 이용해 확인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일반인들이 접하는 방송을 통해 알리면서 회사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고소 사유다. 박 명장은 앞서 아반떼 엔진룸 누수, 아반떼 에어백 센서 부실, 투싼ix 에어백 미전개 사망 사고, 송파 버스 사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의 사고와 관련해 현대차에 불리한 내용의 방송 인터뷰를 했다. 이 소송은 그러나 같은 해 12월 경찰과 검찰에서 혐의가 없음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처음 만나고 1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건가

상당히 많은 자료를 갖고 있었다. A 씨는 이 자료를 갖고 많은 고민을 했고 몇몇 사람을 만나 의논을 했지만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하다가 ‘훌륭한 분을 만나 영광’이라고까지 했다. 그리고 회사 내 불법적 관행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사소한 얘기도 메신저나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을 만큼 서로를 믿었다. 자리를 옮기게 됐다는 얘기며 사내 감시가 심해졌다는 얘기, 품질담당 총괄 임원이 경질됐다는 얘기도 A 씨한테 들었다.

한 번은 현대차 결함 사실을 미국 당국에 제보하면 거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미국 NHTSA의 리콜 기준에 대한 자료도 나에게 보여줬다. 자동차만 하는 내가 미국의 리콜 기준이 어떻고 내부고발자 지위를 어떻게 얻는 건지, 보상금이니 과징금이니 그런 내용을 어떻게 알 수 있겠나.

 

모두 A씨가 관련 자료를 나에게 보여주며 설명해 줬기 때문에 알게 됐다. 그때 A 씨로부터 미국에서는 결함 사실을 인지하고 5일 이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3억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를 신고한 사람(내부고발자)에게 30%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내부고발자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직속 상관과 감사팀에 시정을 요구하고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부서를 옮긴 후 관계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절차’도 A 씨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다.

A씨가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도 이 때다. 나는 현대차 문제를 가능한 국내에서 풀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문제를 해외 기관에 제보하면 국가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 뻔하고 무엇보다 앞서 A씨가 말한 과징금이니 포상금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면 내부고발의 순수한 의도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봤다.

-현대차에서 보상금을 받아 800평짜리 정비공장을 같이 하자는 얘기가 있다.

그 얘기가 나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미는 전혀 다르다. 2015년 제보자와 함께 일했던 현대차 모 임원이 추석날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다 공항에서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현대차 핵심 기술 자료를 중국 업체에 유출했다는 혐의였다. A 씨는 구속된 임원이 자신이 가장 믿고 따르는 상사였다고 말했다.

 

그런 상사가 구속되면서 자신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얘기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얘기다. 내부 고발 이후 더는 회사에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됐을 때를 그가 걱정했고 자신은 하나의 대안으로 거액의 배상금이 나온다고 하니 그 돈으로 정비공장이나 중고차 사업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공익제보로 그가 겪게 될 고충을 예상했을 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

-내부 자료를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무엇인가

A씨가 미국 기관에 제보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나는 그 자료를 빼앗을 생각마저 했다. 주변에 그 자료가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법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도 알아봤다. 고발하면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자료를 달라고 한 것은 확실한 근거로 현대차의 결함 내역을 증명하고 제대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A 씨에게 보낸 편지에 자료를 공유하지 않으면 자의적인 행동을 암시한 것도 A씨가 미국 기관에 제보하기 전에 이 문제를 공개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나 문자로도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이완용이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를 수없이 했다. 또 하나는 국내에서 먼저 터뜨려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다. 그러면 미국 기관에 제보할 이유가 없어질 것으로 봤다. A씨가 추석 전 서둘러 미국 NHTSA에 제보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으로 본다.

 

-A 씨는 국내에서는 공익제보의 실익을 얻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동안 A 씨에게 현대(차)가 아무리 미워도 우리가 ‘이완용’이는 될 수 없다고 수차례 얘기했다. 공익을 생각한다면 국익도 고려해야 하고 그러려면 우선 국내에서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도 내가 그 자료를 이용해 사익을 챙기려고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A 씨와 연락이 되지 않아 내가 보낸 편지에도 이런 얘기가 있다. 현대차가 바르지 않은 일을 했어도 국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A씨가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을 방문해 결함조사팀장과 리콜 관련 논의를 했다고 하지만 국내에서도 이런 문제를 바로 잡을 방법은 있다고 본다.

국민권익위도 있고 감사원도 있고 공정위도 있고 회사 최고위층도 있는데 미국 기관에 국내 업체의 비리 내용을 제보하면 국가적 망신이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자료를 달라고 했다. A씨가 미국 기관에 제보하기 전에 내가 먼저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현대차에 누구보다 감정이 상해 있는 것이 바로 나다. 그렇지만 공익제보도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국익에 반하는 행동은 공익제보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어떤 의도로 미국에 먼저 제보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공익제보자인 A씨의 입장을 들어 보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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