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게이트 1년, 여전히 건재한 폭스바겐 제국

  • 입력 2016.09.20 10:08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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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이 디젤 엔진(EA189)의 배출가스저감장치를 임의로 조작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시작된 디젤 게이트가 최근 1년을 맞았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폭스바겐 그룹이 폭스바겐을 포함한 산하 브랜드의 디젤차 배기가스를 조작했다”고 발표한 때는 지난해 9월 18일이다.

디젤게이트가 시작된 이후 미국에서는 해당 차량을 소유한 소비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또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하지만 한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는 아직도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이 벌어지고 있고 배출 가스 조작 장치에 대한 수사가 폭스바겐 이외의 협력사로까지 확대됐다.

디젤게이트 사태가 시작된 직후와 초기, 폭스바겐의 존망을 전망하는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은 수 백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보상금, 브랜드 신뢰 및 가치의 하락으로 판매가 줄어 최소한 산하 브랜드 몇 개는 매각을 하고 축소 경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토요타, GM과 세계 1위 메이커 자리를 놓고 벌이던 경쟁에서 밀려날 것으로 보는 관측도 많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폭스바겐 제국은 여전히 건재했다. 디젤게이트 사태가 시작된 지 만 1년이 되기 이틀전, 폭스바겐 그룹이 전 세계 미디어에 전달한 실적 자료를 보면 글로벌 판매는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8월 판매는 75만9400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6.3% 늘었다. 8월까지의 누적 판매량 역시 666만대로 같은 기간 1.8% 증가했다.

▲ 2015년 10월,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시인하고 이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폭스바겐 그룹 임원들

디젤게이트의 주범격인 폭스바겐 브랜드의 성장세도 견고했다. 8월 한 달 45만4200대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7% 판매가 늘었다. 누적 판매량도 383만 대로 작년과 비슷하다. 이는 감소세가 줄어 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요 국가별로 봤을 때 누적 판매량이 줄어든 곳은 미국과 한국뿐이다. 미국에서는 1.1%, 지난달 판매가 아예 중단된 한국에서는 47.7%나 줄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8.3%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주요 소비 시장인 서유럽의 8월 판매는 8.5%, 독일에서는 11.6%나 늘었다. 중앙 유럽과 동유럽 시장에서도 7.1% 늘었다. 아시아 지역 전체 판매도 매우 증가했다. 8월 한 달간 작년 동기 대비 14.9% 증가한 34만7000대를 팔았다. 1월부터 8월까지 7.0% 증가한 270만대를 기록했다.

폭스바겐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 이유는 ‘디젤게이트’가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직접적인 피해와 무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시장 분석 전문가는 “연비나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깎아주고 뭘 끼워주고 한다니까 산다는 사람이 줄 서는 거 봤지 않느냐. 배출 가스의 정도가 선택의 고민 요소가 아니므로 기본 상품성이 월등하게 뛰어난 폭스바겐을 포기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모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폭스바겐 골프

그는 “유럽에서는 이미 폭스바겐이 예전의 상태로 회복 됐다고 봐도 된다. 판매는 늘고 있고 중고차 시세도 평균 이상이기 때문에 배상액 부담은 있지만, 미국이나 한국 같은 곁가지 시장에 신경을 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폭스바겐의 건재함은 잔존가치에서도 나타난다. 국내에서는 폭스바겐의 중고차 시세가 폭락했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정 반대다.

영국 왓카에 따르면 3년 이상(3만6000마일) 된 폭스바겐 중고차의 감가상각률은 42.21%로 업계 평균치인 41.69%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왓카는 “폭스바겐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골프와 폴로는 여전히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고 중고차 거래 실적 상위 10위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자세를 낮춰왔던 폭스바겐도 이런 반전 실적에 고무된 듯하다. 그룹의 세일즈를 총괄하는 임원은 “(최근의 성장세는)고객들이 우리 브랜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임원은 “중국 시장에서의 성장세”를 언급했다. 전·현직 고위 임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줄줄이 소환하고 독일 본사까지 조사하겠다고 요란을 떨던 우리 정부와 검찰이 어느 순간 잠잠해졌고 배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소송에 폭스바겐이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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