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볼보 신형 XC90

  • 입력 2016.05.31 11:21
  • 수정 2016.05.31 11:33
  • 기자명 이다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볼보가 10년 넘게 유지하던 (정확히는 13년) 대형 SUV XC90의 신모델을 내놨다. 강산이 변할 시간동안 회사는 중국 지리자동차의 품으로 들어갔고 자율주행과 전기차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자동차 업계를 둘러쌌다.

이 가운데 꾸준히 맥락을 이어온 것은 ‘안전’이다. 볼보의 캐치프레이즈와 같은 ‘안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XC90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 차는 각종 충돌테스트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이번에 새로운 XC90 역시 등장하자마자 ‘안전’에 대한 기준을 새로 만들고 있다.

인천 영종도에서 송도를 오가는 약 103km 거리에서 두 시간 정도 짧은 시승을 했다. 시승차는 2.0리터 가솔린 엔진에 수퍼차저와 터보를 장착한 T6 AWD와 2.0리터 디젤엔진에 트윈터보를 붙인 D5 AWD다. 짧은 시간에 두 차를 번갈아 타느라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짧은 시간의 소감을 정리한다.

 
 
 

외관은 익숙하다. 이미 모터쇼와 국내에서 열린 사전공개현장을 통해 눈에 익었다. 망치를 형상화한 헤드라이트 디자인과 사다리꼴을 품은 네모난 뒷모습은 SUV의 전형적인 구도다. 전시장이나 모터쇼가 아닌 도로에서 만난 XC90은 생각보다 작고 낮아 보인다. 길이 4950mm의 차체는 대형 세단보다 작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간 XC90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 그랬을까.

시승을 위해 건네받은 키는 세련됐다. 차체 디자인과 색상에 따라 소비자가 직접 커버를 교체할 수 있다. 우드 무늬도 가죽도 씌울 수 있단 이야기다. 운전석 문을 열면 화려하지 않은 실내가 인상적이다. 40여개가 넘던 버튼을 크게 줄였다. 눈에 띄는 버튼은 운전석 왼쪽에 두어개, 센터페시아에 열 개 남짓이 전부다. 나머지는 중앙에 세로로 길게 자리한 터치스크린이 담당한다. 스티어링휠의 버튼도 마치 콘솔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의 컨트롤러를 보는 듯하다.

시트는 이 차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다. 가죽은 얇은 느낌이다. 손가락 끝으로 눌러보면 균일한 주름이 사방에 생긴다. 매우 고급 가죽이란 뜻이다. 허벅지 공간을 채워주는 기능과 함께 헤드레스트는 얇고 작고 단순하지만 안정적이다. 자리에 앉으면 그리 크지 않은 시트가 단단하게 몸을 받쳐준다.

 

운전석에 앉으면 모든 기능이 한눈에 들어온다. 스티어링휠 앞에 클러스터는 모두 LCD화면이다. 아주 잠깐 단점으로 지적하자면 계기반의 움직임이 엔진의 회전수 변화보다 느리다. 즉,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LCD 화면의 바늘은 툭툭 튀며 숨가뿌게 올라간다.

 
 

중앙에 9인치 LCD화면은 가로 768픽셀, 세로 1020픽셀이다. 약간 구형의 태블릿 PC와 비슷한 사양이다. 차량의 모든 기능은 이 화면으로 조절한다. 심지어 조수석의 시트 각도도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세로로 만든 화면은 전기차 테슬라가 처음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르노삼성자동차의 SM6가 구현했었다. 다만 SM6는 반응속도가 느렸는데 XC90은 일반적인 스마트폰 수준까지 따라왔다. (안드로이드폰과 비슷한 움직임이다. 매끄러운 아이폰의 움직임은 아니다.)

화면의 디자인은 당연하게도 선택이 가능하다. 흰색계열, 검정색계열을 선택할 수 있고 운전석 앞의 클러스터도 스포티하게 차분하게 바꿀 수 있다. 실제 오너가 되면 그다지 사용하지 않겠지만 화려한 맛을 주는 옵션이다.

아이콘의 디자인을 보니 요즘 유행하는 ‘스칸디나비안’이 떠오른다. 무엇인가 단순하고 부드럽고 자연친화적인 것을 일컫는 말처럼 들리는데 이 차의 디자인이 그렇다. 단순하지만 정제된 아이콘들은 사용의 편의성을 떠나서 깔끔하고 안정됐다.

 

스칸디나비안디자인을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 차에는 화려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무엇인가 신기능을 넣거나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사용하면 강조에 강조를 더하느라 바쁜 대다수 자동차 브랜드와는 다르다.

▲ 볼보의 파일럿 어시스트2
 

화려하지 않은 점을 몇 가지 꼽자면 이 차는 자율주행에 가장 근접한 기술인 ‘파일럿 어시스트2’를 탑재했다. 차선을 읽고 주위 상황을 인식하며 보행자, 자전거 등을 구별한다. 주변 차의 움직임도 파악해 미리미리 대응할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이를 알려주는 아이콘은 운전석 계기반의 녹색 스티어링휠 모양이 전부다.

 

안전벨트도 바퀴가 헛돌거나 사고 상황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당겨준다. 탑승자를 꽉 잡아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인데 안전벨트 주위에 아무런 표시도 없다. 정면 충돌시에는 발목 부상 방지를 위해 브레이크페달이 꺾여들어가는데 설명서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요소다.

곳곳에 숨겨진 기술을 살펴보면 화려함보다는 실용성 위주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탑승자를 지키는 역할에 충실하며 기술을 자랑하기 위한 수식은 어디에도 없다.

 

가솔린 엔진의 T6 AWD 모델을 먼저 시승했다. 4기통에 수퍼차저와 터보차저가 함께 들어갔다. 시동을 걸자 다소 갤갤거리는 소음이 들린다. 극도로 정숙함을 추구하는 국산 고급 세단이나 일본산 차의 느낌과는 다르다. 4기통 엔진인 것도 있고 터보차저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모든게 합쳐지면서 그다지 조용한 차는 아니다. 유난히 묵직한 변속레버를 당겨 출발한다. 가속페달을 밟는 느낌이 경쾌하다. 공차중량 2톤을 조금 넘긴 2165kg의 몸을 쉽게쉽게 끌고 나간다. 8단 자동변속기는 평범하다.

 
 

잠시 엔진 이야기로 들어가자. 보닛을 열면 움푹 들어간 곳에 가솔린 엔진이 있다. 보닛 위의 공간에서 많이 내려갔다. 엔진을 아래에 두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볼보는 1969cc의 엔진블럭 하나로 거의 모든 라인업을 커버한다. 심지어 디젤과 가솔린이 같은 블록을 사용한다. 위대한 원가절감이자 연간 50만대 생산하는 브랜드의 처절한 생존법이다.

다만 엔진이 모난 구석은 없다. 50만대 생산규모에서 나올 수 있는 수준은 분명 아니며 가솔린과 디젤 모두 세계 정상급 엔진이다. T6 가솔린 엔진은 저속에서도 밀어주는 힘이 뛰어나다. 배기량의 한계가 고속에서는 나타나지만 이 차는 시속 150km/h, 200km/h를 달리기 위해 세팅한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도심형 SUV의 역할로는 충분하다 못해 과분한 엔진이다.

 

디젤엔진 D5로 차를 바꿔타니 신세계가 펼쳐진다. 2.0 디젤 엔진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같은 블록에서 이렇게 다른 느낌이 있을 수 있나 싶다. 가속 느낌이 매우 경쾌하고 부드럽다. 움직임에 만족했는데 소음과 진동에서 또 한번 만족한다. 특히나 진동은 가솔린 모델에 비해 오히려 더 적다. 보닛을 열자 비밀이 나타났다.

굵고 단단한 엔진마운트가 보인다. 중앙에는 고무로 진동을 방지한 흔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무척이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율주행 기능은 아직 미흡하다. 기술이 미흡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문제다. 영종도와 송도의 잘 정리된 도로를 달릴 때에는 제대로 작동한다. 손을 놓고 다녀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 물론 15초에 한번, 24초에 최후의 경고가 울려 운전대에 손을 올리게 한다.

 

그러나 공사구간이나 차선을 반듯하게 그린 곳이 아니면 문제가 발생한다. 파일럿 어시스트는 스스로 차를 컨트롤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소리없이 사라진다. ‘난 책임없어’라는 동작이다. 아직은 자율주행 기능이 운전자 보조도구로 작동하는 모습이다. 자율주행은 차와 도로를 포함한 환경이 모두 바뀌어야 할 문제다. 그래서 아직은 시기상조다.

T6와 D5 모두 시트 구조는 동일하다. 2열은 좌우에 ISOFIX를 각각 하나씩 장착했고 볼보의 상징과 같은 유아용 부스터시트는 2열 중앙에만 넣었다. 부스터시트는 유아도 안전한 높이에서 벨트를 멜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성인이 앉을 경우 착좌감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 중간점에서 타협한 모양이다. 3열 시트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국산 SUV인 싼타페의 3열과 비슷한 공간이다. 성인 남성이 오랜시간 앉아서 가기엔 무리고 짧은 시간 이용하기엔 괜찮아 보인다.

 

3열 시트를 세워놓으면 트렁크 공간이 좁다. 볼보 특유의 화물 고정용 격벽을 세우면 편리하다. 다만 스페어 타이어를 아래에 비스듬히 넣어서 트렁크 공간이 깊지는 않다. 3열 시트를 접어두고 사용하면 적당해 보인다.

XC90의 오디오와 주행질감은 평가를 보류한다. 짧은 시간 고속주행 위주의 길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다. 사실 이 차의 엔진과 변속기, 실내 공간과 디자인 그리고 숨어있는 깜짝 놀랄만한 장점을 찾다보니 오디오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했다.

 
 

볼보자동차에 따르면 XC90은 올 7월부터 고객 인도를 시작한다. 이미 600여대가 예약됐고 올해 1000대 고객 인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만약 이달에 계약을 한다면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디젤 엔진의 D5보다 가솔린 엔진의 T6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의 디젤 엔진 사태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볼보관계자는 전했다.

 
 
 

전반적으로는 볼보의 XC90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는데 의의가 있다. 볼보의 새로운 언어를 완벽하게 표현한 차다. 디자인과 퍼포먼스, 편의장비까지 모두 ‘볼보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느낌을 느끼려면 전시장에서 잠시 설명을 듣거나 짧은 거리를 시승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볼보는 옛날부터 오래 타야 진가를 발휘한다. 당장 차를 보면 독일 유명 브랜드와 비교해 단순하고 밋밋하겠지만 오너가 되어 매일 타다보면 종종 기술과 디자인에 감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