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민낯 드러나는 수입차, 족집게 예언 있었다

  • 입력 2015.09.22 09:17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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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마주칠 일이 자주 있는 국내 완성차 임원은 “폭스바겐 연비는 조사해 볼 필요가 있어. 우리 엔지니어들이 아무리 좋은 조건으로 테스트해 봐도 쟤네가 얘기하는 연비가 안 나와. 뭔가 있다니까”라고 말했다.

먼 얘기도 아니고 지난 주에 들은 말이다. “공론화를 하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이 쪽에서는 누구나 아는 얘기인데도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면 되레 욕먹을 게 뻔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공교롭게도 이틀 후, 이 얘기는 사실로 드러났다. 폭스바겐이 프로그램을 조작해 심사를 받을 때마다 작동해 배출가스의 양을 줄여주는 첨단 장치로 꼼수를 부린 사실이 미국 환경청(EPA) 조사로 탄로 났기 때문이다.

도덕성에 예민한 미국 소비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인터넷에 실린 관련 기사 댓글에는 “책임자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야 한다”,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더는 디젤차를 팔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등 격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폭스바겐 사태는 엉뚱한 곳으로도 번지고 있다. 과거 도요타의 급가속 문제, 지엠(GM)의 시동키 결함 은폐, 혼다의 타카타 에어백 결함도 같은 차원에서 처벌해야 한다는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수입차 업체들이 연달아 자신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골프클럽 파손 영상, 중고차를 새 차로 둔갑시켜 팔고 엄청난 고금리로 금융소득을 올리는 등 몰상식적 행동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국내에 수입차가 공식 수입된 것은 1987년이다. 당시 판매된 차량은 10대, 그리고 상당 기간 수입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를 넘지 못했다. 수입차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10만대의 벽을 돌파한 이후부터다. 수입차 고성장의 배경에는 디젤 세단이 있었다.

SUV 또는 상용차나 쓰는 것으로 알았던 디젤 엔진을 올린 세단이 ‘힘 좋고 연비 좋은 고성능 수입차’로 각인되면서 지금까지 수입차 시장의 70% 이상을 지배하고 있고 국산차 시장을 잠식해 왔다.

그러나 지난 해 연비 논란이 불거지고 강화된 규제가 마련되고 유로6가 도입되면서 수입 디젤차의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올 초 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푸조는 유럽대비 현저하게 낮은 국내 연비로 곤욕스러워했고 일부는 국산 모델과 함께 연비가 과장됐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받고 과징금을 내기도 했다.

폭스바겐이 검사를 받을 때면 배출가스를 차단하는 장치가 작동하는 기발한 장치로 클린디젤이 됐고 이런 사실이 들통 나면서 천문학적 벌금을 내고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폭스바겐 코리아는 미국과 우리의 환경 규제가 다르므로 별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 정부 조사가 시작됐고 여러 가지 의문점도 남아있다.

미국에서 문제가 된 모델들의 국내 판매 차들을 살펴보면 CO2 배출량이 오히려 낮거나 연비는 되레 높은 경우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측정 기준에 조금 다른 점이 있다고 해도 같은 엔진을 사용하는 동일 차량치고는 격차가 자못 크다.

앞서 언급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자사 엔지니어들이 제기한 의혹의 자료를 공개하고 정부에도 제공하기 바란다. 자신들이 먹을 욕이 두려워 알고 있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더 큰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상기시켜 주고 싶다.

아울러 어느 기업이든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하며 모호한 태도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면 수입차 28년 역사 가운데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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