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출력과 속도, 컨버터블이나 쿠페 혹은 비싸야만 드림카는 아니다. 새내기 직장인 고상미(27. 대전시)씨의 드림카는 작고 실용적인 경차다. 주머니 사정 탓도 있지만 여유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미 씨는 그러나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의 드림카를 포기했다. 고를만한 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아차 모닝과 레이, 그리고 쉐보레 스파크가 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일본에서 직접 경차를 들여오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세와 운반비, 이런 저런 인증에 필요한 부대 경비를 계산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결국 한 차급을 올려 소형차를 샀다.
가장 아쉬웠던 모델이 있다. 현대차가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는 i10이다. 그는 "우리나라 법규상 경차는 아니지만 다부진 스타일에 연비도 좋아서 확 끌렸다"며 "그러나 이 차를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좋은 차를 왜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고 들여오지도 않고 또 팔지도 않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현대차가 돈이 안 되는 차는 안 만들고 또 있어도 팔지 않는다는 얘기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차 i10은 터키 이즈미트 공장서 생산돼 유럽 전역에서 팔리고 있는 소형차다. 작고 실용적인 소비에 익숙한 유럽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컨셉으로 2008년 처음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50여만대가 팔렸다. 이보다 조금 큰 i20도 같은 기간 40여만대를 기록했다.
현대차 유럽 성장세를 주도하고 있는 핵심 모델로 자리를 잡았지만 고상미 씨와 다름없이 국내에서 이 차를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현지에서 구매해 개별적으로 수입하는 통로도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지난 5월 기준 국내에서 판매된 경차는 1만 6371대, 소형차는 2만 122대가 팔렸다. 반면 중형차는 4만 6945대, 중대형은 1만 3793대나 됐다. 경, 소형차보다 중형차가 더 팔렸고 경차와 중, 대형차는 비슷했다. 수입차도 지난 6월 한 달 동안 경차보다 많은 1만 7803대가 팔렸다.
우리 소득수준, 경제규모로 봤을 때 비정상적인 자동차 소비 행태로 볼 수 있는 이런 상황은 왜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시장 지배력이 가장 큰 현대차의 무관심으로 볼 수 있다.
경차는 고사하고 i10, i20과 같이 작고 실용적인 모델들을 밖으로만 내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i10 또는 i20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욕구는 크다. 자동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WRC에 출전한 i20, 그리고 i10의 놀라운 연비가 큰 화제가 된다. 오죽하면 "현대차가 i10, i20을 국내에서 팔도록 청원을 하자"는 댓글까지 달렸을까.
현대차가 어떤 전략을 선택했던 i 시리즈 가운데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i30, i40이 고전을 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분석 전문 기관의 한 관계자는 "브랜드 충성 고객은 하위 제품에서 상위 제품으로 이어주는 연결성으로 증가하고 지속 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차 i시리즈는 몇 개의 톱니가 빠진 상태, 그러니까 i10에서 시작해 i40까지 이어주는 연결점이 없고 따라서 토대가 없는 상위 모델들이 부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처럼 i시리즈 풀 라인업이 판매되고 있는 유럽에서 i30는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9만 6000여대, i40은 3만 3800여대가 팔려 나갔다. 같은 기간 i30의 국내 판매는 1만대, i40는 5000대를 가까스로 넘겼다.
수지가 맞지 않는 차를 안방에 내 놓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자초하고 실적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해석이 무리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런 얘기도 하고 싶다. 엄청난 금액을 재단에 기부하고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을 내는 것만이 기업의 사회공헌이 아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공급하는 것, 올바른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것도 기업의 책무다.
생산 능력이 충분한 i10, i20 아니면 이보다 더 작고 실용적인 경, 소형차를 더 만들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주고 절대 다수의 드림카를 실현시켜주려는 현대차의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