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섬 E. 올즈(Ransom E. Olds)는 19세기 후반 미국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897년에 미시건 주 랜싱(Lansing)에 올즈 모터 비클 컴퍼니(Olds Motor Vehicle Company)를 세워 가솔린 엔진 차 생산을 시작했던 그는 1899년에 새롭게 투자를 받으면서 근거지를 디트로이트로 옮겨 올즈 모터 웍스(Olds Motor Works)를 설립했다. 새 회사와 함께 새로 짓기 시작한 공장이 완공된 1900년 초부터는 새차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1년여 사이에 11종류의 시제차를 만들
오펠 창업자 아담 오펠(Adam Opel)은 1895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부인과 두 아들 카를(Karl)과 빌헬름(Wilhelm)이 가업을 물려받아 계속 꾸려 나가고 있었다. 재봉틀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계류를 만들어 성공을 거둔 오펠 가문은 19세기가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자전거에 이어 자동차 분야로 진출한다. 때마침 오펠은 발명가인 프리드리히 루츠만(Friedrich Lutzmann)이 세운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자동차로 발을 넓혔다. 루츠만은 1893년 처음 자동차를 발명해 1895년 데사우(Dessau)에서 자동차 생산을
지금은 물론 오랫동안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 업체 자리를 지켜온 피아트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자동차를 생산한 업체이기도 하다. 창업 이후 줄곧 아니엘리(Agnelli)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여러 초기 자동차 업체처럼 개발자가 사업을 키워 회사로 만든 것은 아니다.피아트의 첫 차로 알려진 3 1/2hp(또는 4hp)는 원래 체이라노(Ceirano) 형제의 회사에서 만들었다. 조반니(Giovanni), 에르네스토(Ernesto), 마테오(Matteo) 체이라노 형제는 19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웰아이즈(
알프레드 르노(Alfred Renault)의 여섯 형제자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난 루이 르노(Louis Renault)는 어릴 적부터 기계와 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10대에 프랑스 자동차의 선구자 중 하나인 파나르(Panhard)의 엔진을 연구하는 한편, 증기자동차로 이름을 알린 레옹 세르폴레(Leon Serpollet)의 공방에 드나들며 기술을 익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파리 근교 불로뉴 비앙쿠르(Boulogne-Billancourt)의 집에 있는 정원에 작은 작업실을 차리고, 개인적으로 쓰기 위한 독자 설계의 단순한 작은
헨리 포드(Henry Ford)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해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미국 자동차 산업의 태동기 여러 발명에 도전하기도 했다. 앞서 기술자로서 여러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특히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이 만든 에디슨 일루미네이팅 컴퍼니(Edison Illuminating Company)에서 쌓은 경력은 자동차 개발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그곳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내연기관과 자동차 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893년 12월 24일 즉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
푸조가 자동차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86년의 일이다. 가족 기업으로 금속을 사용한 각종 제품을 만들었던 장피에르 푸조(Jean-Pierre Peugeot)의 손자 아르망 푸조(Armand Peugeot. 사진)는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아 당시 새로운 탈것으로 주목받던 자전거와 삼륜차 생산을 시작했고, 관심이 있던 자동차를 실제 생산으로 연결할 방법을 찾았다.푸조는 레옹 세르폴레(Leon Serpollet)의 증기기관 특허에 주목했다. 세르폴레가 만든 순간 증기 발생 장치는 작은 크기에 많은 물이 필요 없었고 빠르게 시동을
미국의 유명 강연가 레스 브라운의 명언 가운데 하나 "출발하기 위해 위대해질 필요는 없지만 위대해지려면 출발부터 해야 한다". 성경에도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위대하거나 창대한 미래를 꿈꾸지 않고 뭔가를 도모하거나 시작했거나 출발선을 박차고 나간 이가 있을까. 자동차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세계 최초이든 아니든 어느 브랜드나 많이 팔거나 혹은 경쟁자를 제쳐 버리겠다거나 아예 판도를 바꿔보겠다는 따위의 원대한 꿈을 안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그런 것처럼 결과는 달랐다. 이미 결딴
자동차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메르세데스-벤츠를 이야기 할 때면 ‘최초’, ‘최고’ 등 화려한 수식어가 자주 동반된다. 오늘은 조금 색다른 수식어를 단 메르세데스-벤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자동차 역사와 관련된 인물들은 대부분 남성이며, 여성은 손에 꼽는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벤츠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여성 인물과 관련된 의외의 기록을
일본의 거대 기업 후지중공업의 자회사인 스바루는 평소 “차를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자동차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던 켄지 키타(Kenji Kita) 후지중공업 초대회장에 의해 설립됐다.1954년 항공우주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초의 프로토타입 승용차인 ‘P-1’이 탄생하게 되자, 황소자리에 있는 6개 별이 모인 ‘플레이아데스(pleia
혼다(Honda)는 혼다 소이치로 창업자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브랜드이다. 혼다 소이치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유명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을 자지 못했다는 혼다 소이치로는 모터사이클로 월드GP 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가 하면, 자동차 생산 2년 만에 F1 우승을 하며 브랜드의 명성을 이어갔다.이와 같이 끝없는 도전으로 현재까지도 혼다 만의 독창성과 기술력을 강력한 무기로 삼고 있다. 혼다의 경영 철학은 이른바 ‘혼다이즘’으로 정의되어 지금까지 경영학뿐만 아니라 이공계, 제조업계의 신화로 여겨지
닛산자동차 1933년에 설립된 이래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의 전세계 시장에서 닛산 고유의 디자인과 수준 높은 품질로 세계 소비자들의 신뢰와 믿음을 받아오고 있다.‘일본산업(日本産業)을 줄인 닛산(日産)은 1914년 도쿄에 세워진 카이신자동차공장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나라의 시발과 같은 일본의 제1호 국산차 ‘DAT’는 당시 공동 창업자인 덴 켄지로
렉서스는 토요타의 기존 제품과 구분되는 전혀 새로운 브랜드로 출범하여 참신한 제품과 새로운 컨셉트로 세계 자동차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미국에서는 '프리미엄 럭셔리 세단' LS400을 선두로, '경제적인 럭셔리 세단' ES와 고성능 스포츠 세단이 제품 라인업에 추가되고 "운전자에게 참된 기쁨을 선사한다"는 새로운 마케팅 개념이 선보이면서, 더욱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렉서스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신차 개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품질과 고객만족을 위한 렉서스만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